도현은 촬영 스케줄이 없는 날, 아침부터 윤서에게 연락했다.
— 오늘 하루 저 좀 빌려가실래요?
윤서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 무슨 소리예요.
— 데이트 제안이죠. 정식으로.
결국 오후, 두 사람은 서울 시내 한 미술관 앞에서 만났다.
윤서는 차분한 원피스를 입었고, 도현은 모자와 안경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숨길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여기, 원래 팬들 몰래 자주 오던 곳이에요.”
도현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전시 보는 걸 좋아하나요?”
“네. 조용히 그림 보면서 생각 정리하는 게 좋아서요.
오늘은 윤서 씨랑 같이 보고 싶었어요.”
전시실은 은은한 조명 아래 한적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작품을 감상했다.
윤서가 한 그림 앞에 멈춰 섰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작은 빛이 번지는 추상화였다.
“이거… 이상하게 마음이 가네요.”
윤서의 말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뭔가 윤서 씨 같아요.”
“제가요?”
“어둠 속에서도 자기만의 빛이 있는 사람.”
윤서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려 시선을 돌렸다.
“이런 말, 미술관에서 하면 더 반칙이에요.”
“그럼 밖에서 다시 해줄까요?”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전시가 끝나갈 무렵, 도현이 휴대폰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살짝 찍었다.
윤서가 놀라며 물었다.
“왜 찍어요?”
“오늘 처음으로, 그냥 데이트다운 데이트 한 날이잖아요. 기록하고 싶어서.”
그는 화면을 가슴에 끌어안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윤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저녁이 되어, 두 사람은 한강 근처를 걸었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강바람이 스쳤다.
윤서가 팔을 가볍게 감싸며 말했다.
“밤공기가 생각보다 쌀쌀하네요.”
순간, 도현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재킷을 걸쳐주었다.
“이런 게 데이트 기본 매너래요.”
“어디서 그런 거 배웠어요?”
“지금 배우는 중이에요. 윤서 씨한테.”
강변 벤치에 앉아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강물을 바라봤다.
윤서가 속삭이듯 말했다.
“사람들 눈에 안 띄는 지금은… 그냥 평범한 연인 같네요.”
“맞아요. 근데 전 어디서든 그렇게 느껴요.
사람들이 뭐라 하든, 윤서 씨 옆에 있으면 그냥 평범한 남자예요.”
윤서는 그의 손을 살짝 잡았다.
이번엔 스스럼없이.
“오늘… 진짜 좋았어요.”
“저도요. 근데 내일도 더 좋게 만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