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사인회

by 은나무


토요일 오후, 도현의 팬사인회가 열렸다.

대형 서점 행사장엔 이미 수백 명의 팬들이 줄지어 있었다.

윤서는 스태프 패스를 목에 걸고, 행사장 뒤편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사실 사인회는 늘 도와온 현장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젠 단순한 스태프가 아니라, 그의 여자친구다.

그 사실이 마음 한구석을 묘하게 무겁게 했다.


“오늘 많이 긴장되죠?”

옆에서 수진이 속삭였다.

윤서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그냥 일처럼 하면 돼.”

하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대 위로 도현이 등장하자,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윤서는 익숙한 장면임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환호가 한때는 자신이 보냈던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사인회가 진행되는 동안, 윤서는 팬들의 눈길이 은근히 자신에게 향하는 걸 느꼈다.

‘저 사람이랑 찍힌 거 맞지 않아?’

‘분위기 좀 이상한데….’


속삭임이 들릴 때마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 순간, 도현이 사인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윤서를 향해 눈길을 보냈다.

수많은 시선이 오가는 행사장 속에서, 단 한 사람만 바라보는 듯한 눈빛.


윤서는 순간 호흡이 멈췄다.

심장이 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무대 뒤편.

윤서는 장비를 정리하는 척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도현이 다가와 낮게 물었다.

“윤서 씨, 괜찮아요?”

“… 솔직히 좀 힘들었어요.”

“알아요. 다 보였거든요.”


도현은 잠시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오늘 정말 고마워요. 저 혼자였다면 아마 더 힘들었을 거예요.”

“나 때문에 더 힘든 거 아니고요?”

“아니요. 오히려 반대예요. 내 옆에 있어 주는 게, 어떤 소리보다 든든했으니까.”


잠시 침묵 끝에, 윤서는 웃음을 터뜨렸다.

“도현 씨, 참 이상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결국 나만 보게 만든다니까요.”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가, 곧 단단해졌다.

“그게 정답이에요. 전 언제나 윤서 씨만 봐요.”


행사가 모두 끝난 뒤, 밤거리로 나오자 팬 몇 명이 여전히 근처에 남아 있었다.

윤서는 순간 움찔했지만, 도현이 태연하게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걱정 마요. 이제 우린 ‘우리’니까.”

그리고는 대놓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주변에서 플래시가 터질 듯 시선이 쏠렸지만, 도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윤서는 놀라 숨을 고르다, 결국 손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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