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소년 시절 문제를 달고 살았다.
흡연, 가출, 친구들과의 몸싸움….
그때마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고, 더 심해지면 파출소나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새벽 한 시에 연락을 받고도 엄마는 달려오셨다.
엄마는 늘 바빴다.
새아빠 병간호와 생계 때문에 하루하루가 버거웠지만, 한 번도 “바빠서 못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학교든 파출소든 경찰서든, 부르면 언제든 오셨다.
그리고 늘 선생님과 경찰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키웠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초라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문제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다른 아이들을 탓하지 않았다.
“우리 은정이가 너희들까지 물들였니.”
오히려 그렇게 말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곤 했다.
다른 부모들이 “우리 애랑 가까이하지 마”라며 날 밀어내거나, 복도에서 따귀를 때린 것과는 달랐다.
엄마는 나를 더 튕겨내지 않기 위해, 속으로 속상하면서도 최대한 이해하려 했다.
엄마의 그 마음이 결국 내게 남아 있었다.
제가 사춘기였던 그 시절만 해도, 아이들이 길에서 담배를 피우다 어른이 지나가면 숨기곤 했습니다.
그래도 눈치를 보고, 죄책감을 느끼던 모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며 어른이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입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숨길 필요가 없다”는 당당함을 갖게 된 건, 사회와 환경이 크게 변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지금의 부모는 예전보다 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자녀를 바라보게 됩니다.
저는 제 경험을 통해, 엄마가 끝까지 믿어주신 태도가 결국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엄마들은 그 믿음에 더해, 달라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부모의 믿음은 여전히 큰 힘이 됩니다.
다만 지금의 위험은 더 커졌기에, 믿음과 함께 현실적인 대화와 제도적인 도움을 병행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