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집을 나갔다.
새아빠가 싫었고, 엄마는 늘 병간호와 일 때문에 집에 없었다.
혼자 남겨진 듯한 집이 답답해 벗어나고 싶었다.
‘멀리 떠나 돈을 벌어 엄마를 도와야겠다’는 철없는 생각까지 했다.
그 길에 나설 때, 나는 엄마가 부엌에 늘 두던 비상금을 꺼냈다.
엄마는 내가 그 자리를 아는 걸 알면서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셨다.
나를 믿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돈을 들고 친구와 함께 집을 떠났다.
일주일쯤 지나서야 엄마와 친구 엄마가 우리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엄마는 신발도 제대로 챙겨 신지 못한 채,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동네를 헤매며 나를 찾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를 찾았을 때, 엄마는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
엄마가 아껴둔 돈을 다 쓰고 돌아온 나를 혼내기보다, 안아주며 말했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다음 날 엄마는 학교에 연락해 며칠은 쉬어야 한다고 전했고, 집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옷을 사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나를 달래주었다.
엄마는 훗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웠어.”
그때 다른 부모들의 반응은 달랐다.
내 친구의 엄마는 아이를 집에 가두고 철저히 감시했다.
머리를 잘라버리거나, 함께 놀던 친구들을 강제로 끊어놓는 경우도 많았다.
내게는 복도에서 뺨을 때리고 간 부모도 있었다.
심지어 바쁘다며 아이를 찾으러 오지 않는 부모도 있었다.
그 속에서, 엄마만은 달랐다.
엄마는 화를 삼키고, 돌아온 나를 먼저 품어주었다.
그 마음이 결국 내게 남아 있었다.
제가 가출했을 때만 해도, 결국 집으로 돌아오면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가출이라 해도 친구 집을 전전하거나 며칠 외박하는 정도였지, 사회적으로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가출한 아이들이 모여 이른바 ‘가출팸’을 만들고, 미성년 성매매나 폭행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SNS와 온라인을 통해 더 쉽게 위험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이들이 노출되는 위험이 커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부모들은 더 복잡한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엄마가 돌아온 나를 다그치지 않고,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품어주셨던 경험을 했습니다.
그 믿음이 저를 더 멀리 나가지 않게 한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믿음에 더해, 현실적인 대처도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와 위험성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고, 필요하다면 전문가나 상담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답은 없겠지만, 부모의 믿음과 품어주는 마음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거기에 지금의 시대에 맞는 지혜로운 대처가 함께한다면, 아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더 단단히 열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