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는 그대로 봐준 단 한 사람

by 은나무


나는 그렇게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며 지냈다.

그곳에서 노래방이 아닌 업소를 운영하는

14살 많은 남자를 알게 되었고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늘 사랑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랐던 나는 그 사람의 어른스러움과 듬직함 내가 기대고도 넘치는 넓은 품.

나를 보호하고 아껴줄 것만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때 나는 누구든 나를 친절하게 따뜻하게 대해주면 쉽게 마음을 열곤 했었다. 이때도 아마 사랑보다는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 같다.



우리는 함께 동거를 하기 시작했고 처음다정하고 듬직했던 모습과 달리 그 사람은 점점 거칠게 변해 갔다.

술에 취한 날이면 나에게 마치 가스라이팅 하는 듯

늘 하던 말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너는 별 볼 일 없는 여자라고..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그나마 자기가 사람처럼

살게 만들어 준거라고...
자기를 떠나면 다시 더러운 인생 속에 인간쓰레기 같은 부류의 남자나 만날 거고 노래방 도우미 일이나 다시 하면서
그런 남자 뒷바라지나 하며 평생을 살 거라고....



계속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땐 정말 맞는 말 같았다.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이 시궁창 같은 삶이 맞지 않은가.
그런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며 먹고살아갈 것이고 얼마나 괜찮은 남자를 만나 팔자를 피겠나 싶은 게 다 맞는 말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희망도 없는 삶에서

나는 결국 죽어야 끝이 나는 건가 싶은 우울증이 찾아왔다.

정서적 폭력과 잦은 협박 나를 무시하는 태도 모든 것들에 얽매여 나를 놓아주지 않는 그 사람 손아귀에 잡혀 지냈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며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미용 학원에서 만나 친하게 지낸 언니의 말에 내 삶이 바뀌는 순간이 온다.



언니는 내게 언제까지 그렇게 희망도 없는 그 사람과

고통 속에 살아가려고 하냐 지금이라도 다시 미용일을 시작해라. 그리고 어느 정도 미용으로 네가 먹고살 수 있을 때에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공포와 불안함에 두려웠지만 언니와 헤어지자마자 바로 미용실을 알아봤다.

27살 나는 다시 미용일을 시작했다.

2년 동안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곳 원장님은 교회를 다니셨고 교회 사람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중 엄마나이쯤 돼 보이시는 권사님께서 자꾸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싫다고 거절했지만 점점 마음을 열게 되었고

기도를 받기로 했다.

처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던 그날

예전 내가 처음 만났던 그 무당처럼 눈물을 흘리며 내가 가엽다고 했다.



기도를 하며 권사님은 내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너무 아프다. 너를 위해서 특별한 마음이 생긴다고 하시며 기도를 마치셨다.

나는 또 그날 내 안에 가득했던 아픔이 터져 나왔다.



그 뒤로 엄마보다는 그 권사님이 나를 늘 찾고 돌봐 주셨고 나의 사정을 다 아신 후에 그 사람하고 헤어져야 한다고 수없이 격려와 기도로 나를 도왔고 드디어 나는 결심했다.



권사님과 원장님의 도움으로 나는 그 남자에게서 도망갈 준비를 마쳤고 여느 때와 똑같이 미용실에 출근을 하는 척했다. 미리 준비한 옷가방 하나만 들고 아무도 모르는 도시로 모든 연락을 끊고 권사님이 사준 핸드폰 하나만 들고 도망 같은 탈출을 했다.



그렇게 나온 나는 새로운 도시에 있는 미용실에서 근무했고 어느 날 친구가 나이트를 가자 했다.

나는 귀찮았으나 친구가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자꾸 미뤄내기 미안해서 함께 나이트를 갔다.



심드렁하게 앉아서 친구가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냥 맞춰주고 놀다 오기로 했다.

들어가서 10분이나 지났을까 웨이터가 나와 친구를 데리고 부킹을 시켜준다고 데리고 갔다.

웨이터가 지정해 주는 대로 자리에 앉았고

맞은편에 앉은 친구 표정을 보니 맘에 들어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그냥 시간 때워줘야지 하는 마음에 함께 하기로 했다.



옆에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괜히 심드렁했다.

이어서 들려오는 뻔한 멘트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묻는 남자의 말에

나는 무심하게 귀찮다는 듯이

"남자 만나서 놀려고요" 하고 대답했다.

그게 나와 지금의 내 남편과 첫 만남이었다.



남편도 그날 그냥 하루 놀고 말 생각에

돌싱이고 4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나도 내 이야기를 솔직히 이야기했다.

어차피 오늘 보고 말 사람인데 뭐 어떠냐 싶었다.



그러다 가끔 맛있는 밥 사준다며 연락처를 묻기에

예의상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며칠 뒤 연락이 왔다.

"점심에 뭐해요? 같이 밥 먹을까요?"

혼자 모르는 외지에 와서 외로웠는데

밥 사준다고 하니 나는 또 선뜻 나갔다.



젖은 파마머리, 슬리퍼에 티셔츠 반바지를 입고

대충 나갔는데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엄청 놀랐다고 했다. 아니 속으로는 욕했다고 한다.

그날 밤 나이트에서 본 여자는 어디 가고 짜리 몽땅한

어린애 같은 애가 보였다고 했다.



순간 여기까지 시간 내서 온 게 짜증이 났지만

이왕 만났으니 밥이나 먹고 헤어지자 생각한 남편과

아무 생각 없이 밥이나 얻어먹자 하고 무심히 나오게 된 나.

우리는 그렇게 두 번째 만났다.



생각보다 나이트에서 만난 놈이 별거 있나 그저 그렇지 하는 편견 하고는 다른 평범하고 멀끔한 사람이었다.

남편도 생각보다 순수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내가 불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가끔씩 만났다.

나는 어차피 남편을 그냥 편한 밥 사주는 아는 오빠로 생각해서 술을 마실 때면 내 지난 일들을 다 이야기했다.

내가 전에 무슨 일을 했고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전부 다 말을 했다.



남편은 그런데도 나를 편견 없이 대해줬다.

애 딸린 돌싱 말고는 너무나 평범했던 남자의 눈에 나는 어떻게 보였을까? 싶었지만 우리는 자주 만나고 서로를 알아갔고 마음이 깊어졌다.



서로의 아픔을 덮어주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간절한 내 꿈을 남편이 이뤄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일 년을 공들여 연애했다.

그에겐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4살짜리 아들과 함께 매일 같이 만났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며 설계했다.



그땐 잘살고 싶었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또 엄마를 닮은 듯 다르게

남이 낳은 아들을 품게 되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준 그 한 사람을 믿고 새로운 삶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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