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초반에는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고생해서 아이를 낳았나…”
싶은 후회가 밀려올 만큼 독박육아가 시작됐다.
둘째는 12월 1일에 태어났고,
석 달 뒤 3월에 첫째는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그저 남편과 둘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내가 왜 그렇게 까지 했을까
싶다. 그때의 나는 ‘남편은 일을 하니 육아와 살림은 전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옭아맸다.
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둘째는
유난히 잠을 자지 않아 울어대는 통에 다른 아기들과 분리되어 혼자 독방 생활을 하거나 수시로 나와 함께 있었다.
산후조리는 조리원 2주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전부인데
유난히 예민한 녀석 때문에 조리원 천국이란 말도 무색했다.
집에 와서도 아들은 나에게 단 한순간의 틈을 주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쯤에야 두 시간 겨우 자고
또 칭얼대다 안겨서 잠깐씩 눈을 붙이고… 내려놓기라도 하면 바로 울어서 늘 배 위에 올려놓고 함께 잤다.
모유수유가 잘 되지 않아 분유를 먹였는데,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분유를 먹기만 하면 분수토를 했다.
위장이 약한 아기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아들과 내가 벗어놓은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 와중에 첫째 입학 준비를 해야 했고
아침 7시에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밥도 차려야 했고
낮에는 집안 살림까지…
모든 게 내가 그린 그림처럼 척척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내 앞에 놓인 건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었다.
조리원 2주 생활 동안도 애가 운다, 안 잔다, 울어서 다른 아기들까지 깬다며 갖가지 전화를 받으며 달달 시달렸는데, 집에 와서는 더 큰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은 아침에 출근해야 하니 편히 자라고
우리 당분간 각방을 쓰자고.
그런데 이 눈치코치 없는 무심한 남자는
순순히 응하며 아침엔 새벽밥 먹고 퇴근해서도 내게 “잠깐이라도 쉬라”는 말 한마디 없이 시간만 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워 쿨쿨 자는 거였다.
남편을 배려해서 말은 했지만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
같아 가끔 나는 속으로 울컥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며, 너와 나를 닮은 아이를 낳자고
그 개고생을 했나? 결국 이렇게 혼자 다 떠안으려고?”
하는 현타가 밤이면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삶조차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에 비하면 오히려 평범하고 감사한 나날이었다.
사실 현타보다 행복이 더 많았다.
나는 결혼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도 낳았다.
출산의 고통과 신생아 육아는 한 번으로 아들 둘이 생겼다.
그리고 내 과거를 알지 못하는 동네에서
함께 아이 키우는 엄마들과 친구가 되어
평범한 주부들의 대화를 나눴다.
내가 꿈만 꿀 수밖에 없던 아늑하고 따뜻한 집에서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그토록 평범하고 평범한
삶을 살게 되었다.
길고 긴 추운 겨울을 지나
드디어 내 인생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