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거울 앞의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동안 잘 버텼다고 이 정도면 괜찮게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닦이지 않은 눈물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상처를 직면하고, 조심스레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간의 시간들을 잘 이겨냈다고 생각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자라온 환경에 비해 썩 괜찮게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이만하면 잘 살았다 생각하며
더 더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롭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둘째가 돌이 될 무렵쯤 우리는 처음 시작한 그곳에서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나는 참 강하다 스스로를 생각했는데
이사하고 아이가 돌이 지나고
큰애가 2학년이 되면서 많이 지쳐갔다.
여러 가지 강박들이 생기고 이 행복한 시간이 꿈이면 어떡하지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이제 행복한데 불행이 또 닥치면 어떡하지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온갖 불안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 강박과 불안과 육아 스트레스는 나를 점점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늘 가시를 세우는 짜증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남편에게
“네가 이런 여자일 줄 알았으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다.”
라는 말까지 들었다.
나도 제대로 된 양육과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으니
아이들을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잘못된 육아 방법인 줄 모르고 그저 사랑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하며 길렀다.
내 생각과 내 마음대로 아이들을 키웠고
남편에게는 처음과 다르게 냉랭하게 대했다.
한 번 이혼한 상처를 약점 삼아 또 그렇게 되기 싫으면
내게 잘하라는 태도를 앞세워
우리 집 남자 셋을 모두 힘들게 했다.
사실 남편은 내 과거를 모두 알았어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하지 않았는데 나는 남편의 약점을 늘 무기로 삼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소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성격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낯선 곳에서 더 깊이 동굴 속에 갇혀 살기 시작했다.
둘째가 4살, 28개월쯤 됐을 때 내게 단 한 시간이라도 자유를 줘야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찾았고 등원시키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내게 꿀 같은 휴식을 주었지만 잔뜩 웅크려진
나는 쉽게 펴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 하원 버스를 기다리는데 내 또래 보이는
밝은 표정의 엄마가 내게 싱글벙글하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영재 엄마시죠? 같은 반 한결이 엄마예요!”
나는 나를 아는 척하는 그 엄마가 너무 불편했다.
누구랑 말도 섞기 싫은데 왜 이렇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나 부담스러웠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자꾸만 마주치는
그 엄마가 불편했다.
아이들끼리 친해서 하원차에서 함께 내리고
같은 단지지만 다른 동에 살아서
헤어질 때마다 아이들이 아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 때문에 우리 둘째도 동굴에 갇혀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먼저 그 엄마에게 다가갔다.
“오늘 하원하고 뭐 하세요?”
“아파트 단지 도서관 가요.”
“그럼 저희도 같이 가요.”
그날 우리는 작은 도서관에서 함께했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이 서로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와 다른 밝은 성격의 한결 엄마가 신기했다.
나와는 다르게 상처 없이 잘 자랐나 보다 생각했지만
세상에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 엄마도 삶의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아이들 없는 시간에 차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는 점점 내 상처를 보게 됐다.
내가 강해서도, 괜찮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당연한 줄 알고 묻어둔 아픔들이
내 안에서 곪고 있었다.
그 상처가 결국 나를 아프게 하고,
내 가족을 아프게 했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나는 강해! 이만하면 잘 살았어! 기특해!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 상처에 눈을 돌렸던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그제야 보였다.
내가 찌르던 가시가 결국 나 자신에게 향해 있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직면하기로 했다.
내 안의 상처를 마주하고, 가시를 하나씩 뽑아내며
그 아픔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건 아프고도 시원한, 참 오래 걸린 눈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내 안의 상처를 감추지 않고 꺼내어 볼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고, 내 가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의 온도는 여전히 들쑥날쑥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마음이 다치지 않게 사는 법은 다쳐도 스스로를 안아주는 법이라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