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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정윤 작가]

by 은나무

https://youtu.be/RblIsNFR1j4?si=wr-eFtdVCy0RU5Ya


“김한영 개**.”


결국 이 말이 나오게 만드는구나.


이마를 짚으며 긴 한숨을 내쉰다.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정경에 한숨 말고는 나오는 게 없다.


바닥에 널브러진 기저귀들, 손수건, 이불.

젖병도 세 개나 꺼내놓고, 저 분유 가루는 대체 여기 왜 있는 건데?


아니, 대체 어떻게 하면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이런 난장판을 만들지?


밤새 아이와 사투한 거 고맙다, 이거야.

새벽같이 출근해야 하는 날인데 아기 봐줘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근데, 그러면 적어도 일거리는 늘려놓지 말아야 하지 않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꾹꾹 눌러 참으며 일단 주섬주섬 바닥을 치우기 시작했다.


우리 애기가 자고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짜 폭발할 뻔했다.


지연은 후, 하고 숨을 내쉰 후 다시 허리를 굽혔다.

아이가 태어난 지 2개월 하고도 반.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남편이라는 놈은 매일 이렇게 애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허둥거린다.


“내가 뭐, 많은 거 바랐냐고. 그냥 씻기고 재우는 것만 해주라고. 자기가 밤에 보겠다고 했으면 어질러 놓지나 말던지.”


지연은 내내 중얼중얼 남편에 대한 투정을 늘어놓으며 돼지우리 같은 방 치우기를 계속했다.


아마 중간에 아이가 깨지만 않았어도, 깨끗하게 치울 수 있었을 텐데.


으앙, 하는 소리에 후다닥 달려가는 내 신세야.

애는 너무 예쁜데 몸이 너무 고달프다. 흑흑.



“나 왔어~”


아이를 안고 퀭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멍을 때리던 지연은 힘없이 돌아온 남편을 맞이했다.


“어, 왔어.”“좀 잤어?”

“아니…….”


늘 그렇듯 같은 대화.

같은 표정, 오고 가는 똑같은 마음.


한영은 부리나케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은 후 옷을 갈아입었다.

넓지도 않은 집에서 잰걸음으로 다가와 아이를 받아 가는 그를 보며, 지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밥은 먹었어?”

“아니……. 쟨 맨날 나 밥 먹을 때만 깨더라.”


식탁 보여? 점심 먹으려고 차린 거 아직 다 먹지도 못했어.


다 식은 거 먹기도 싫다며, 지연이 지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 아내를 안쓰럽게 보던 한영은 핸드폰을 열어 지연에게 건넸다.


“먹고 싶은 거 시켜. 얼른 씻기고 재울게. 그동안 좀 쉬고 있어.”

“당신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너 먹고 싶은 게 나 먹고 싶은 거지. 금방 재우고 올게. 쉬고 있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영이 일어나서 꼬물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한영의 핸드폰으로 적당한 음식을 주문한 뒤 그대로 소파에 누운 지연은 가만히 누워있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 설거지해야 하는데.

빨래도 해야 하고, 건조기에 있는 거 개기도 해야지.


남편이 쉬라고 했는데.

왜 나는 쉴 수가 없는 걸까.


결국 밍기적 밍기적 일어난 지연은 거실에 널브러진 빨래를 주섬주섬 모아 개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이는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데.

대체 왜 일감은 계속 쌓이는 걸까.


바닥에 앉아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지연이 느릿느릿 빨래를 개고 있을 때였다.


“옳지, 우리 공주님. 얼른 맘마 먹고 코 자자.”


아이에게 한없이 상냥한 남편의 목소리.

거기에 화답하듯 무어라 무어라 옹알거리는 아이의 목소리.


지연의 시선이 슬쩍, 아직 덜 치운 지난밤의 난장판으로 향했다.


씻기는 건 이제 완전 프로인데, 대체 왜 밤 육아는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몇 번 안 해봐서?


그렇다고 다음날 출근하는 사람한테 밤새 애 보라고 하기도 그런데. 그냥 잘하는 것만 해주지,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올 쯤.


다시 통하지 않을 대화를 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 마디 되지 않는 그 소리가 어찌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던지.


그래.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이 미운 건 어디까지나 호르몬 탓일 거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화를 가라앉히는 건 아마 충분히 잘 수 있을 때나 되겠지.


그러니까 오늘은, 잔소리는 조금 넣어 두도록 할까.

힘없이 꺾였던 고개가 다시 천천히 올라왔다.


오늘은, 그래도 비교적 평안한 저녁인 거 같다.


“악! 여보, 애기 기저귀 좀! 다 샜어!”

……음. 방금 한 말 취소.
역시 말은 함부로 뱉으면 안 되는 거 같다.



[저자소개]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직장은 직장대로, 글쓰기는 글쓰기대로. 욕심은 많고 체력은 없어 매일이 도전인 사람.


https://brunch.co.kr/@jungyoon


[은나무가 드리는 이야기]


우리 정윤 작가님은요 원래는 웹소설 작가님 이세요!

웹소설에서 유명하시고 소설 또한 좋아하시는 꿈 많은 작가님이십니다. 그래서 정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장면장면 눈앞에 그려지는 그녀의 글은 어느덧 글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작가님은 브런치에 소설을 연재하고 계신데 아이 둘을 키우며 살아가는 워킹맘이라 연재를 꾸준히 하기 힘들어하고 계셔요.


이번 브런치를 통해 매주 꾸준히 글을 쓰며 열심히 노력 중이십니다. 정윤작가님의 브런치에 담겨있는 소설 정말 재밌어요.

작가님의 브런치 속 소설이 계속 이어지기를 재미있는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독자님들도 함께 많이 많이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저와 별밤의 이야기를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그 응원에 힘입어 더욱 성장하며 좋은 글로 찾아오는 별밤의 작가들이 되길 바라며.... 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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