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밤 작가]
(3. 가족들 데리고 해외 여행 - 수틀리면 멈춘다)
우리 집에서 가방끈이 긴 건 나뿐이었다.
그래서 사실 다른 이가 보면 우습겠지만 집에서만큼은 브레인 취급을 받는다.
짧은 영어만 내뱉어도 가족들에게 무한 찬사를 받는다.
마치 초1 앞에서 구구단 외우면 엄마 천재 소리 듣는 듯이?
나 역시 일부러 발음을 굴리거나
아는 단어 중 가장 어려운 단어를 쓰고 그들의 반응을 즐긴다.
내가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그건 내 탓이 아니라 상대의 발음 탓.
가족들은 다 같이 ‘유창한 원어민 상대의 발음’을 탓한다.
이렇게 영어와 거리가 먼 가족들이
해외여행을 자유 여행으로 간다는 건 불가능이었다.
패키지 여행만 한 번씩 한 가족들은 자유 여행을 편하게 하는 날 부러워했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나는 한국인을 상대하는 곳만 다닌다는 걸.
충분히 그들도 가능하다는 걸.
“언니,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말 잘 들을게.”
귀찮았지만, 여행은 밀린 효도를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방편이었기에 수락했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한 명이라도 짜증내거나 부정적인 표정을 보이는 즉시, 멈춘다.”
그렇게 온 가족을 이끌고 무려
비행기를 최저가로 예약하고,
현지 숙소를 한국에서 예약하고 메일을 보내고,
비행기에서 내려 탈 택시를 영어로 예약했다.
비행기 예약을 하는 방법도, 숙소를 한국에서 예약하는 방법도 모르던 그들은 문명을 만난 원시인처럼 고작 번역기를 돌려 영어로 메일을 보내는 나를 동경했다.
우리의 여행지는 방콕.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엄마와 호텔 수영장을 좋아하는 동생과 조식을 좋아하는 동생.
예산이 많지 않은 우리의 최적의 선택지였다.
게다가 비행시간도 무려 6시간!
해외 멀리 나가는 느낌까지 뿜어져 나와 그들은 설레서 여기저기 자랑하기 바빴다.
최저가 비행기는 충분히 불편했고, 내려서 택시를 타기까지 여기저기 헤맸고, 시장 안의 숙소는 굉장히 시끄럽고 더러웠다. 그 당시의 나도 고작 두어 번 여행한 게 다였으니까.
엄마는 좋아했다.
외국 느낌이 난다며, 문 밖이 바로 시장이라 혼자 나가서 돈만 내밀면 다 살 수 있다며.
여동생은 분명 싫었을 텐데 나만 보면 입꼬리를 올렸다.
눈은 웃지 않았지만.
그렇게 시장통 한 가운데 저렴한 숙소에서 이틀을 묵고,
우리 나름의 최고급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그 숙소는 가격 대비 무척 좋았고 조식과 루프탑 수영장까지 갖췄지만 중심지에서 멀었다.
겨우겨우 큰 짐들을 들고 다니며 숙소로 이동한 후,
다시 방콕 중심부 예약해 둔 맛집에 저녁을 먹으러 이동해야 하는데, 버스는 거의 오지 않았고 이미 우린 지쳐있었다.
- 택시라도 타자!
택시를 겨우 잡아 방콕 중심부를 말씀드렸다.
이제 됐다. 택시 내려서 저녁만 먹으면 살아나겠지.
우린 전혀 몰랐다.
방콕의 늦은 오후는 교통 체증이 심각하다는 걸.
방콕의 중심부로 향하는 거리는 청담역에서 압구정현대백화점까지의 도로와 같았다.
그대로 정지.
“잇츠 쏘 테러블 트래픽 잼 (traffic jam).”
기사님은 내려서 걷는 편이 낫다고 했다.
잠시 고민했다.
- 그들은 이미 짜증의 한계치를 진작에 넘었다.
특히 여동생은 짜증을 한 번 내면 터져서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을 저 예쁜 구두를 신고 걷게 하는 즉시, 파국이다.
그렇게 십 분을 더 택시에서 고민하다, 내리기로 했다.
- 내리자. 걸어서 두 정류장쯤이야.
여동생은 또 특유의 입꼬리를 올리는 입매를 보여줬다. 눈빛은 사나웠지만.
그렇게 요금을 계산하고 내리니, 기사님은 우릴 향해
“Have a nice trip.”
하고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때부터였다.
도로의 정체에 짜증이 가득했던 모두는 그와 함께 웃었다.
그 후로는 찬찬히 주변을 뜯어보며 둘러보며 걸었다.
- 여긴 개가 있네.
방콕에서는 아기를 저렇게 태우고 다니네.
오토바이에 몇 명까지 타지?
저 가게는 재미있어 보인다. 구경 갈까?
엄마, 누나들! 저기 저 노을 좀 봐봐!
우리가 걷는 길 왼쪽 편엔 붉고 노란빛의 노을이 가득,
오른편엔 방콕 로컬 길거리가 가득이었다.
이게 여행이구나.
그렇게 방콕은 즐겁게 보낸 기억보다는 도로의 정체가 더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되었다.
여행 후, 가족들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았어?”
- 응 중간에 짜증 날 뻔했는데 꾹 참았어.
짜증내면 다시는 안 데리고 다닐까봐.
근데 힘든 게 더 기억에 남아. 또 데려가 줘.
K장녀는 책임감이 강하다.
그만큼 일을 진행할 때에 독불장군이 되기도 한다.
그걸 감수하고 따라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했기에 우린 진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은, 여행을 대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저자 소개]
극내향인. 삼 남매의 장녀이자 삼 남매를 키우는 40대 어머니.
https://brunch.co.kr/@bbboooks
도서출판 별밤의 대표님
오늘로 이번 연재 마무리를 제일 먼저 끝내셨습니다.
우리가 모여 용기를 낼 수 있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마 다른 작가님들께서 대표님이 함께하는 이 시간이 많은 힘과 용기가 되었을 거 같아요!!
별밤님의 K장녀 이야기는
많은 장녀들의 공감을 사는 이야기로 별밤님의 스토리를 통해 무겁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그렇지만 우리들 장녀의 무게를 잘 담아주셔서 더 공감하며 읽을수 있었던
거 같아요. 앞으로의 별밤작가로서 브런치 활동도 기대되고
재밌고 좋은 글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께도 별밤대표이자 별밤작가님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은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