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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딸이란다

[은혜 작가]

by 은나무


작년 늦은 봄즈음.

<엄마도 딸이란다>라는 제목의 전자책을 쓰면서 나는 비로소 '엄마'를 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나는,
엄마는 늘 나를 상처 준 존재로 기억했다.

내게 늘 "넌 착하니까 참아라."
그 말에 갇혀 오랫동안 내 감정을 억눌러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글을 쓰며 깨달았다.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음을...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했고,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 울었을지도 모르는

한 소녀였음을...



그래서 나는 엄마의 삶을 직접 듣기로 했다.

엄마를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녹음기를 켜고,

기록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엄마의 그때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어?"



물론 엄마의 지난 이야기가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

아들 못 낳아 쫓겨난 외할머니 이야기.

외할아버지 두 번째 결혼으로 새엄마 때문에

설움 받았던 이야기.



제때 공부 못해 한 맺혔던 이야기.
열다섯 살부터 서울 식모살이를 시작한 이야기까지.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또 그 소리다.'



그러면서 대충 흘려들었다.
늘 하던 옛날 얘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그 이야기를 글로 마주하니

너무 다르게 와닿았다.



열다섯 살 소녀였던 엄마가,
너무 안쓰럽고, 짠해서 눈물이 났다.



부모와 여섯 동생에게 보탬이 되려고,

낯선 서울에서 식모살이하던 그 어린 소녀의 고단함이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그저 우리 엄마가 어릴 때 고생이 많았구나 정도로

내가 이해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한 인간의 힘겨운 생애를 살아낸 엄마를 이제야 전부는 아니어도 조금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열다섯 살 소녀를 이제야 제대로 만났다.

이제는 그 소녀를, 그때의 내 엄마.

춥고 배고프고 서러움도 느낄 새도 없이 살아내야 했던 어린 시절의 엄마를 만나 따뜻하게 꼭 안아주고 싶다.



올해부터 엄마는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문해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셨다.

공책 위에는 쌈지학교', 짬뽕', '커피' 같은 글자들이 빼곡하다. 삐뚤빼뚤하지만, 세상 어떤 문장보다 반짝인다.


엄마의 한글 공부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 이름도 쓸 수 있어. 우리 애들 군대에 있을 때,

다른 엄마들은 다 편지를 보냈는데 나는 글을 몰라서 편지를 못 썼어. 그게 참 마음이 아팠어 글을 알았다면, 내 아들한테 편지한 장은 남길 수 있었을 텐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엄마의 마음속에 쌓인 가슴 아팠던 세월이 전해졌다.

배우지 못해 스스로를 묶어둔 세월, 언젠가는 글을 배워 사랑을 한 장의 편지로라도 남기고 싶었던 마음.



엄마의 그 말은 내게도 울림이 되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소녀야, 이제 늦지 않았어. 지금이 라도 마음껏 배우고, 마음껏 피어나렴."



그날 이후, 나는 엄마의 글씨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평생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여자의 첫사랑의 언어였다.



엄마가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뒤로,

우리 사이엔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어느 날, 엄마가 밥상 위에 놓인 쪽지를 내밀었다.

"이거, 내가 쓴 거야." 종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은혜야 고맙다."



그 한 줄이 마음을 울렸다.
예전엔 늘 "밥 먹었냐", "몸 조심해라" 같은 말뿐이 던 엄마가
처음으로 나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글로 받아본 순간이었다.

그 속에는 그동안 말로 다 못했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엄마가 글자를 배우는 동안,
우리 집안의 공기엔 조용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 온기가 내게서 내 딸에게로도 전해졌다.



딸아이가 외할머니의 공책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엄마, 할머니 글씨 너무 귀엽다."
그 말에 엄마가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이건 단지 글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세 여자가 마음을 나누며

엄마-> 나-> 내 딸 에게 오해와 상처는 점점 지워지고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이 깊어지는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만 같아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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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작가님은 누구보다 글을 통해 세상에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시는 작가님입니다.


특히 경기도 지역 내 어느 시청에서 운영하는 가족상담소에서 근무하며 오랫동안 여러 가족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면서 작가님 개인의 가정 문제도 깊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늘 멋진 작가님입니다.


늘 새롭게 배우고 스스로에게 적용시켜 가면서 배우고 깨닫는 걸 나누고 싶어 하는 작가님의 글을 항상 응원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따뜻함 가득한 글을 많은 이들에게 삶의 희망으로 전해 주시는 작가님이 되기를 은나무 또한 진심을 다해 응원합니다.!


독자님들도 은혜작가님에게 함께 응원해 주시면

엄청난 힘이 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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