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 작가]
https://youtu.be/K5q0hicEF0M?si=ufSnJPgL4jegFg5Q
“엄마, 사랑해. 좋은 꿈 꿔.”
“응. 엄마도 사랑해. 잘 자.”
반짝이는 두 눈 가득 웃음을 담은 아이가 행복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지연은 그런 아이를 두 눈 가득 담다, 이마에 작게 입을 맞춰주고는 방을 나왔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문을 닫고 나온다.
행복하고 따뜻한 그 순간도 잠시.
또다시 마주한 온갖 장난감의 잔해에 옅게 한숨을
내쉬어야 했지만, 지연은 허탈한 웃음을 짓고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년, 아니.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기저귀를 비롯한 빨래,
물티슈 더미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몇 달만 더 지나면 36개월이 되는 아이의 뒤에는,
이제 책과 색연필, 가위로 오린 종이 같은 것들이 더 많았다.
빨래도 처음보다 많이 쌓이지 않고,
설거지거리도 확실히 줄었고.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한 시간보단 오히려 말이 통하니
더 조심하게 되는 시간이 늘어가는 요즘.
아이가 커간다.
인간 한지연이, 여자 한지연이, 엄마 한지연이 되어 간다.
영원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남편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그 모습을 바꾸고, 언제고 어렵고 힘들기만
할 거라 생각하던 육아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또 다른 의미로 어려워진다.
이제는 더 이상 허리를 숙여 잡지 않아도 되는
아이의 작은 손.
계절이 지날 때마다 사이즈를 키워가는 아이의 작은 키.
더 이상 같은 말을 반복해서 연습시키지 않아도 곧잘 따라 하는 작은 입술.
여전히 작고 작지만, 언제고 그 마음만큼은 감히 저보다
크다 말할 수 있는, 환하고 따스한 웃음.
지연은 지금쯤 꿈나라로 향하고 있을 아이의 방문을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육아는 아직도 어렵고, 부딪쳐야 하는 것들 투성이지만.
지연은 지난 몇 년간, 그 모든 힘듦을 상쇄하는 또 다른,
제가 그간 알지 못하던 또 다른 어떤 것이 있음을 배웠다.
“서아는 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슬쩍 다른 방문이 열리며
한영이 나왔다.
평소 아빠가 워낙 잘 놀아주다 보니, 아이가 잘 시간이 되면 한영은 조용히 다른 방으로 들어가 아이가 잠들 때까지 일을 하거나 책을 보다 나오곤 했다.
아빠가 같이 있으면 자꾸 놀아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매일 본의 아니게 감금생활을 하는 그는, 이렇게 숨을 죽이고 방을 나올 때가 가장 불쌍해 보였다.
“응. 방금 눕혀놓고 나왔어. 고생했어.”
지연은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지친 얼굴의 남편을 다독거렸다.
“우리 서아가 진짜 많이 크긴 컸다.”
그런 지연의 옆, 함께 쪼그리고 앉은 한영이 주섬주섬
아이의 장난감을 함께 정리했다.
방금 지연이 느꼈던 것들을 고스란히 느끼는 모양인지, 한영의 얼굴에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번져갔다.
비단 장난감만이 아니다.
아이가 사용하는 어휘나 구성하는 문장, 먹고 마시는 것이나 하는 행동까지.
“그래도 아직 애기지.”
시간이 흐르며 많은 것이 변했지만,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건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무한한 애정이었다.
긴 하루에 지쳐 잔뜩 짜증이 올라온 날도,
별것 아닌 것에 괜스레 화를 낸 날도.
아이는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었고, 먼저 환한 웃음으로 마음을 녹여주었다.
남들은 아이가 참 예쁘다고, 잘 크고 있다고, 사랑을 많이 받은 티가 난다고 하지만.
글쎄.
부모가 주는 것들은 아이가 주는 것들의
반의 반도 안 될 것 같은데.
지연은 생각했다.
쑥쑥 자라는 아이만큼, 한 번씩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란 아이의 마음만큼.
제가 아이에게 건네는 사랑 또한,
오래도록 계속되면 좋겠다고.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
아이를 위한 딱 하나의 소원만 남게 된다면.
아이가 준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영원했으면 하고 말이다.
그리고 바라게 된다.
그렇듯 가득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오래도록, 영원했으면.
“쑥쑥 크는 게 예쁘다가도 조금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 그런 건가?”
읊조리듯 중얼거린 말에 빙그레 미소 지은 얼굴이 대답처럼 돌아온다.
지연은 생각했다.
아이가 크면서 마주해야 할 도전들이 많을 거고,
그만큼 골머리도 앓겠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고 키우겠다고 결심한 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감히, 영원을 바라게 되는 지금 이 순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그래서 말인데, 만약 할 수 있다면.
“우리, 둘째도 고민해 볼까?”
조금 더 오래, 그리고 더 많이.
이 행복을 누려보고 싶다고.
https://brunch.co.kr/@jungyoon
[정윤작가님]
정윤작가님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소설같은 이야기.
오늘이 마지막 장면입니다.
늘 글의 내용을 더 잘 와닿게 노래와 함께 올려주시는
쎈스가 이번 브런치북의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저도 정윤작가님을 별밤에서 알게 되어 이번 연재를
함께 하게 되었고 함께 하며 많은 걸 생각하고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엄마들의 육아이야기는 늘 빠질 수 없는 소재인데
정윤작가님 만의 문체와 음악과 내용은 한 편의 재밌는
짧은 영상을 보는 듯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함께 읽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하며 앞으로의 작가님 만의 특유의 강점을 살린 멋진 글을 보게 되길 기대합니다!
-은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