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왜 여기서 나와
##6.첫 데이트에 똥쟁이 되다
저녁 약속을 한 뒤 남편은 퇴근 후 우리의 첫 데이트를 위해서 집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남편은 어머님이 어린 아들을 돌보고 있기 때문에 평일엔 너무 늦은 시간 귀가를 할 수 없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 수원까지 멀지 않은 우리 동네에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남편이 살고 있는 수원까지는 20분 정도니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 편이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매콤한 게 먹고 싶었다.
우리 동네에 낙지볶음 유명한 맛집이 있었다.
나도 먹고 싶었고 남편에게 맛집을 소개해 주고 싶기도 했다.
나는 지난번 젖은 파마머리, 반바지에 슬리퍼, 주근깨 덕지덕지 얼굴의 이미지를 지워보고자
최대한 꾸미되 아주 자연스럽게 꾸미고 나갔다.
집 앞에서 만나는데 또 너무 부담스럽지 않아 보이려고 나에게 정말 어려운 그 중간 어느 정도를 찾느라 힘들었다.
저녁 7시쯤 남편이 도착했다.
나는 남편에게 낙지 맛집을 소개해 준다며 미리 정해놓은 낙지집으로 안내했다.
낙지덮밥을 주문하고 소주 한 병을 시켰다.(지금은 술을 전혀 먹지 않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이 술꾼이었다. 덕분에 남편도 나를 만나 이때 술을 정말 많이 먹었다...)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낙지가 부들부들하고 쫄깃한 게 정말 맛있었다.
소주안주로 정말 딱이었다.
전화통화로 이미 많은 대화를 해왔기에 친숙해진 분위기로 전보다는 부드러운 표정과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슬슬 배가 이상하다.
꾸룩꾸룩 뱃속이 요동 친다.
나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갖고 있다.
이 당시 나는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었고 워낙에 술에 의지해 살던 시절이라 혼자서도 날마다 술을 마시며 지냈던 날들이 많았다. 전날에도 혼자 술을 마시고 잤고 속이 안 좋아 약속당일 낮에는 속을 거의 비워둔 상태였다.
그리고 저녁 첫끼를 매콤한 낙지와 다시 소주를 먹었더니 뱃속에서 나에게 심하게 욕을 하고 있었다.
'아씨 이럼 안되는데 오늘이야 말로 제대로 된 데이트 다운 데이트 같은 만남인데....
배야 미안해 좀 참아주면 안 돼? 여기서 이러면 언니 진짜 쪽팔려진다.'
애써 참아 보려 하는데 밖으로 소리가 들릴 만큼 꾸룩꾸룩 소리가 점점 잦아지고 커진다.
급기야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배가 뒤틀리기 시작하고 더는 참기 어려워졌다.
만난 지 몇 년 된 편한 연인 사이도 민망할법한 이 눈치 없는 대장은 왜 만난 지 30분도 안 돼서 요동을 치냐고.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너한테 정말 너무 막대했어 그래도 그렇지 지금은 아니잖아.
나 오늘은 좀 잘 보이고 싶단 말이야.....'
이상함을 감지한 남편이 나에게 물어본다.
"은정 씨 괜찮아요? 어디 불편해 보이는데?"
낙지 너무 매운가? 다른 거 먹으러 갈래요?"
"아니에요 오빠 미안한데 잠시만요.. "
헐레벌떡하고 달려가고 싶지만 최대한 아주 조심히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면 머무는 시간이 길다.
근데 이 와중에 밥 먹다가 오래 앉아 있을 순 없으니 최대한 후다닥 급한 일을 마치고 태연히 나갔다.
'제발 한 번에 끝내자.. 집에 갈 때까지 그만 멈춰주길 바래...'
남편은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래도 뭐 그게 잘못은 아니고 자연 현상인데 어쩌랴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씨 내가 음식을 잘못 선택했어 무슨 첫 데이트에 낙지덮밥이야. 이빨에 고춧가루는 어쩔 건데 맘 놓고 웃지도 못할 거 아냐. 푼수 떼기 잘 보이고 싶다며 이 남자 내 남자 해야겠다더니 머리가 이렇게나 안 돌아가냐.
이 노매 배는 또 왜 이 지랄이야. 하 오늘 망했다. 지난번 젖은 머리 사건 만회는커녕 더 플러스시켰다.'
속으로 나에게 쌍욕이 나왔다. 이렇게 멍청할 수 있냐 말이다. 왜 생각을 못해.
당장 먹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만나면 어쩌냐. 상황을 미리미리 생각 좀 해야지. 연애 한 번도 못해본 여자 아니잖아. 이 남자 지금 세 번째 만나는데 첫 번째 빼고 두 번 다 엽기적인 그녀 될 판이다....
그랬다. 나는 나이트에서 만난 건은 빼고 젖은 파마머리 이후 두 번째 만남 때문에 남편에게 대단히 웃긴 여자로 찍혔다. 지금도 나를 놀리는데 써먹는 이야깃거리를 선물해 주고 말았다. 낙지 집에서 나는 그날 화장실을 세 번이나 갔다.
하.... 이런 여자 또 어디 있나요? 우리 친구 해요~
그리고.... 나는 결국 그에게 말했다.
"오빠 미안한데 오늘은 제가 배가 안 좋아서 이만 헤어져야 할 거 같아요 미안해요... 다음에 제가 맛있는 거 살게요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괜찮아요 배가 아파서 어떡해요? 약이라도 사다 줄까요?"
"아뇨 그냥 가세요... 집에 가서 쉬면 괜찮아져요"
아 그냥 빨리 가라고 1분도 더는 같이 못 있겠으니... 약도 내가 알아서 사 먹을게 그냥 빨리 가죠 하.....
내 남자 만들기 대작전이고 뭐고 아주아주 두 번째 만남도 나는 남편에게 아주 강하고 강한 인상을 남겨줬다.
똥. 쟁. 이. 평생을 우려먹을 이야깃거리...
만난 지 한 시간 반 만에 우리는 그렇게 첫 데이트를 똥 이야기로 마무리 짓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어떻게 다음에 만날 수 있을지 정말 민망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근데 나의 장점은 내 머릿속엔 지우개가 있다.
또 금방 잊고 어떻게 들이대 볼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한참을 웃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뭐 똥 안 싸고 사는 사람 있어?'
아무튼 남편은 이런 여자를 살면서 처음 봤단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자가 만나자마자 밥 먹다가 그렇게 식을 땀을 흘리며 화장실을 들락 거리는걸.....
그날 그 사건은 남편과 13년 결혼 생활동안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지 모를 최악의 사건으로 남았다.
물론 뭐 살면서 사건들이 참 많지만 만남 초기에 똥쟁이 사건은 최악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