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내가 찜했어
##5.애 딸린 돌싱이면 어때
나는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사랑도 물질도 늘 부족한 결핍 속에 자랐다.
재혼가정의 부모밑에서 먹고살기 위해 바빴던 엄마의 사랑도 보호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랐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여자 아이들이 하나쯤은 다들 갖고 있는 그 흔한 마루인형 한번 제대로 사달라고 해본 적이 없다.
대신에 나는 문방구에서 몇백 원짜리 종이인형을 사서 열심히 가위로 오려서 갖고 놀거나 친구들이 실컷 갖고 놀다가 질려서 버리려고 하는 긴 머리가 다 헝클어진 인형을 받아 머리를 빡빡 밀어서 갖고 놀았다.
구멍 난 양말로 바느질을 해서 모자를 만들어 민둥 머리에 모자를 씌워 갖고 놀았다.
이때 만들어진 결핍 속에 생긴 성격 더하기 원래 타고난 성향까지 합쳐진 탓에 나는 내가 갖고 싶은 게 생기거나 있으면 아주 어떻게든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뭐든지 간에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은 나의 이런 성격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주는 폐해를 단단히 보고 살고 있다. 특히 경제관념 없이 갖고 싶은 물건들을 계획 없이 일단 갖고 보자 하는 성미 때문에 남편은 지금 하루하루 10년씩 늙어 가는 중이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에피소드도 다음회에 다뤄보기로 하기로 하고...)
나는 송찬호 이 남자 호감정도가 아니라 내 남자로 만들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두 번 만나고 이렇게 결정하기도 쉽지 않은데 평범한 매력이 나를 빠져들게 했다.
나는 늘 빠른 결정과 또 결정을 하면 추진력도 빠르다.
이성격도 참 장단점이 많다. (여기서 오는 단점도 오롯이 철저히 계산적이고 계획적인 남편에겐 피로감 곱하기 1000으로 치명타를 주고 남편에게 심한 내상을 입힌다.)
이제 내가 이 사람이 맘에 들었고 만나고 싶어 졌으니 나에게 내숭은 없다.
분명한 목표가 생겼으니 계획? 작전? 이런 건 모르겠다. 그냥 들이대는 거다. 하하하
아참 빼먹은 이야기가 있는데 남편은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날 자기소개를 할 때 자기는 한번 이혼을 했고 4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홀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 주신다고 했다.
지금도 아들은 어머니께 맡기고 친구랑 안양에서 성남까지 오로지 나이트를 목적으로 놀러 왔다고 했다.
나는 그날 이 남자 참 재미도 없고 TMI 하다 생각했다. 뭘 그리 하루 만나서 놀고 말 사람한테 구구절절이 이야기하는지, 나는 하나도 관심 없거든? 하고 대충 흘려 들었다.
근데 이제야 그때 이야기가 생각이 난 거다. 아 맞다! 아들이 있다고 했지!!
그런데 뭐 어때? 나도 재혼가정에서 자랐는데 무슨 상관이야 당장 결혼까지 생각할 건 아니잖아?
일단 만나나 보자~~ 생각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안산에서 살고 있던 나는 그날 우연히 성남으로 나이트를 갔다. 수원에 살던 남편도 그날 친구랑 안양에서 약속이 있었고 안양에 많고 많은 나이트를 두고 성남까지 오다니 말이다.
그리고 웨이터가 딱 너는 여기 너는 저기 이렇게 자리까지 정해서 앉혀서 만난 인연이라니 말이다.
나는 갖가지 이유를 갖다 대며 이건 만나야 해~~ 만나야 하는 인연인가 봐 하며 또 앞서가는 주책바가지를 떨고 있었다. 이제 남자가 전화를 해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전화가 올 때까지 내숭을 떨면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성격대로 하면 된다.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찬호오빠?"
"네 은정 씨 웬일이에요?"
목소리가 떨떠름하다. 나름 최대한 밝게 받았는데 눈치가 100단인 나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제 내 꼴이 너무 그랬나? 머리는 말리고 만날걸 그랬나? 잠깐 사이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뭐 포기할 내가 아니지!
"웬일은 여~ 오빠 지금은 머 하세요? 그냥 심심해서 전화해 봤어요. 어제는 잘 갔어요? "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싫고 좋고 가 분명한 사람인데, 남편은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단칼에 냉정하게 대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분명 내 전화가 달갑지 않았는데도 바로 끊어 버리지 못하고 마지못해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수원에서 구로로 출퇴근을 하고 1시간씩 걸린다고 했다.
나는 그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점점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남편도 말수가 늘었고 대화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나이트에서 만난 놈 치고는 참 괜찮은 사람 같았다.
멀쩡하고 평범한 회사원에 홀어머니가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늘 퇴근 후 집으로 일찍 들어가는 성실함과 대화 속에 묻어나는 기본적인 사람의 인성이나 느낌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점점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남편도 나와 통화를 하고 대화를 하면서 보기와는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남자 꼬시러 왔다는 말과는 다르게 순수한 면도 있고 대화도 잘 통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때 남편이 크게 착각한 일이 있는데 남편은 헤어진 전처까지 남편이 만난 모든 여자들이 남편보다 드센 여자들이었다고 했다. 여자들한테 잡혀 살고 큰소리 한번 제대로 못 치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를 알아갈수록 나한테만은 큰소리 떵떵 치고 살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남편을 내 남자로 만들어야 하는데 본모습은 당연히 감춰야지 대놓고 으르렁 거리면 되나?
내 아무리 내숭이 없어도 그 정도는 할 줄 알고 있는 여잔데 남편이 속았다.)
나중에 남편이 그랬다. 그때 정말 잘못 생각했다고. 자기가 만난 여자 중에 최고로 똘아이였다고.
아무튼 남편과 나는 남편의 출퇴근 시간 그리고 중간중간 남편의 이동시간등 틈만 나면 통화를 했고 점점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이 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 찬호 오빠 우리 데이트해요~ 맛있는 거 먹어요~ 술 한잔 할까요?"
"좋아요~ 안산에 맛집 있나 찾아볼게요 퇴근 후에 만나요~"
그렇게 우리는 세 번째 만남, 제대로 된 첫 번째 데이트 약속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