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드, 2030

by 와타사와

아스트리드 요한스도티르는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얼굴은 전날 촬영의 피로로 약간 부어 있었고, 다크서클이 눈 밑에 짙게 드리웠다. 어깨에 매달린 검은색 카메라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은 그녀의 마음이었다. 어제 촬영한 필름들이 가방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작고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레이캬비크의 아침은 분명히 밝았지만, 어딘가 탁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그 빛은 더 이상 생기를 머금지 않았고, 도시의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아스트리드는 창문을 열고 거리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들의 걸음걸이에는 활기가 없어 보였다. 거리는 고요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겨울이면 눈이 소복이 쌓였고, 여름은 서늘하고 쾌적했다. 그녀는 빙하 위를 조심스레 걸으며 카메라에 담았던 장엄한 풍경을 떠올렸다.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 차가운 공기가 볼에 닿는 감각, 발밑에서 미끄러지던 빙판의 질감. 그러나 이제는 그 소리도, 감각도 많이 사라져 버렸다. 빙하는 속절없이 녹아내리고, 그 자리는 황량하게 변해버렸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거대한 무언가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사라진다는 사실이 그녀는 늘 놀라웠다.


그녀는 카메라를 메고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은 도시 외곽의 빙하가 남아있는 지역으로 촬영을 나갈 예정이었다. 빙하의 흔적을 기록하고, 그 사라짐의 과정을 필름에 담으려는 것이었다. 그녀의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변화의 증거이자 경고가 될 것이라 믿었다. 디지털 파일의 영속성을 믿지 않았기에 계속 필름을 고집했다. 그녀는 그런 대의를 가지고 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그녀는 아직 철이 덜든, 사회성이 부족한, 생활 감각이 결여된 사람이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아스트리드는 어릴 적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작은 영화관에서 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저예산 예술영화와 B급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극장이었다. 영화 속 세상은 그녀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그곳에서 꿈을 키웠다.

그녀는 부모님의 취향과는 달리 특히 ‘메이즈 러너(The Maze Runner)’와 같은 영화를 좋아했다. 많은 게 파괴된 황량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세계에서 그의 또래들이 좌충우돌하며, 그러나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지구와 인류를 구해가는 스토리에 그녀는 늘 매료되었다. ‘가이아의 눈(The Eye of Gaia)’이라는 3부작 소설을 쓰기도 했다. 비가역적인 기후 변화의 위기에서 AI에게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을 맡긴 인류가 받는 고통과 음모, 거기에 저항하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지역 신문에 인터뷰도 하고 그녀가 만든 ‘죽어가는 지구(Dying Earth)’라는 표현은 ‘기후 변화’를 대체하는 표현으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소설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흥미롭고 독창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하는데 책은 팔리지 않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어가는 것과 동시에 촬영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녀에게는 영화감독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지금의 아이슬란드는 그녀의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가 자주 가던 빙하와 숲은 점점 그 모습을 잃어갔고, 도시는 점점 더 삭막해졌다. 그녀의 카메라는 그 변화를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정작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모두가 알듯이 ‘기후 변화’는 이제는 당연하고 모두가 떠들어 대고 있어서 너무 식상한 주제였다. “기후 변화, 심각한 것 잘 알고 있지, 그런데 뭘 더 어쩌라는 거야”


빙하가 사라진 자리에 도착했을 때, 아스트리드는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가운 바람 대신 따뜻하고 습기 찬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매우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눈을 감고 바람의 방향을 느끼며, 한때 이곳이 얼음으로 뒤덮였던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의 풍경은 그녀가 기억하던 그것과 너무도 달랐다. 산등성이에는 더 이상 눈이 보이지 않았고, 대신 새로운 풀과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고정하고 천천히 렌즈를 돌렸다. 사라져가는 빙하의 자취를 담기 위해, 그녀는 무언가를 찾으려 애썼다. 그것은 그녀 밖의 세상이기도 했고, 그녀 안의 무엇인가 이기도 했다.


그녀는 렌즈를 통해 빙하의 흔적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도와 그 결과에 대한 의문을 느꼈다. 그녀가 기록하는 것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그녀의 메시지가 과연 전달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호기롭게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변화는 너무나도 크고, 그녀는 그 변화 앞에서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아니, 나는 정말 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걸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얼까? 삶에 필수적인, 혹은 더 중요하고 유익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냥 좋은 사람, 좋은 일은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건 아닐까?’


촬영을 마친 후, 아스트리드는 도시로 돌아왔다. 촬영의 피로가 몸에 남아 있었고, 그녀는 잠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그녀는 영화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여러 기업, 재단과 접촉하고 있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기후 변화에 대해 무관심했고, 상업적인 성공이 예상되지 않는 그녀의 영화에 투자할 의향도 없었다. 어쩌면 아스트리드 자체가 남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는 종종 너무 바른말만 쉴 새 없이 내뱉는 철없는 모범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물론 그런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채찍질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이 변화를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알릴 것을 다짐했다. 끈기와 지속성은 부모님이 그녀에게 선물한 유일한 자산이다.


그날 저녁, 아스트리드는 친구들과 술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각자의 미래와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대화는 자연스레 어두워졌다. "그런데 말이야, 아스트리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친구 중 한 명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스트리드는 그 말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카메라로 세상을 기록하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그녀가 하고 있는 행위와 미래의 어떤 결과 사이에는 연결점이 많이 부족했다. 그날 밤, 그녀는 집에 돌아와 촬영한 필름을 확인했다. 렌즈 속에 담긴 빙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며칠 후, 아스트리드는 온라인에서 우연히 시간 여행 기술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그것은 아직 실험 단계였지만,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기사를 읽으며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과거로 돌아가 빙하가 녹기 전에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 생각은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찾고 있는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는 미국 과학자의 얼굴이 자신과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 가능성을 상상해 보았다. 지금의 그녀가 하는 일은 단순한 기록에 불과했지만, 그 기록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녀는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면, 자신이 거기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희망을 놓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여전히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 안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아스트리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희미하게 푸르렀고,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빛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그 사라짐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그것이 그녀가 해야 할 일임을. 과거로 그녀가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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