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가 주는 사색
그 마을에서 살고 있는 유물 같은 정신
버스를 타고 톰소여의 무대가 되었던 마을과 동굴을 찾아가는 길이다. 초기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적 모험과 용기를 보여주는 성장소설로 만화며 영화, 소설 등에서 누구나 한 번씩 푹 빠진 적이 있는 캐릭터이고 나도 그랬기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대감에 부푼다.
Winners take it all.
아바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물질의 독점이 본질적으로 내포하는 야만을 듣는다.
너무나 조악한 물질주의의 구호처럼 들리는 그 노래의 제목과는 다르게 꽤나 구슬프게 그 문구를 읊조리는 것을 들으며 그것이 낭만적이고 은밀한 어떤 것으로 미화나 또는 왜곡되고 있음을 느낀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기 위해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시험과 경쟁을 만나게 된다. 월계수를 쓴 승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사회의 제도는 채워지는 것이니 이 노래를 부르는 이가 승자라면 이리 구슬프게 부르지는 않으리라. 사실은 너무나 불공평하고 비논리적인 독점의 원리가 사랑이라는 낭만의 도구로 미화되는 과정이 그 음조 속에서 아련하게 녹아들어 있는 듯도 하다.
모든 제도에 장단점이 있겠지만 역사 속에서 물질을 쟁취하고 누리는 자에게 힘은 아름다운 승자로서 당연히 누려 마땅한 손에 움켜쥔 번개이자 천둥이고 자연재해와도 같이 그 힘에 순응해야 하는 반대의 입장에서는 칼날과도 같은 잔인한 삶의 무게로 나락에 떨어지고 마는 것을 그 노래의 구슬픈 곡조에서 그들의 몸부림과 하소연이 구슬프게 푸르는 음조를 따라 전해져 오기도 한다. 힘과 물질을 독점하는 체제나 그런 얘기는 아니다. 단지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조리와 비논리가 가끔 힘겨울 뿐이다.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들뿐더러 지켜보기도 힘겨워서 거기서 벗어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전쟁 같은 삶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투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견디는 것은 즐기는 것과 차별화되고 그리 쉽지 않으니까.
나는 가운데가 없는 이분법을 품위도 없고 디테일도 부족한 과격한 미성숙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언제나 매시간 그 이분법의 굴레 앞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지나간 선택에 후회와 혐오와 자기 비하를 덧칠한다. 내버려 두어도 되지 않을까 선택하지 않은 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건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강요하는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 선택의 순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것이 기억과 습관의 조작이라 해도 떨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만 어느 순간 그런 선택의 반대쪽에 서는 날이 오고야 만다는 것을.. 언제나 승자일 수 없는 것이 인생의 묘미이다. 힘의 폭력적인 본성을 알고 있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이상과 낭만이라는 것의 멋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유로울 수 없는 결국은 어쩔 수 없는 감상주의자의 넋두리였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어쩌다 승자의 노래를 들으니 의식의 흐름처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버렸다. 예전에 필리핀에 갔을 때 어디를 가나 price tag이라는 노래가 그렇게 나왔더랬다.
톰소여를 만나러 가는 여행길에서 물질주의를 태동하고 태어난 미국의 아직은 낭만이 있었던 초기의 문화와 이야기를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마을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몇몇 지역에 옛날 풍경으로 꾸며놓고 옛날 과자를 팔곤 하는 마을들처럼 그 시절 풍경에 소설 속 캐릭터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관광객을 맞아주는 모습이었다. 가 본 이들도 많겠지만 길게 줄을 서서 톰소여의 모험에서 성장과 모험의 무대가 되는 동굴을 일렬로 지나가면 소설 속 다양한 상징들과 기념품들로 가득 찬 가게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오게 된다. 내가 기대했던 톰소여의 모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런 형태의 관광에 특화된 체험마을은 미국의 여기저기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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