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만난 좋은 인연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타국의 기억을 더듬어볼 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살다 보면 유달리 내 마음을 알아주는 잘 통하는 벗, 형제, 스승, 제자를 만날 때가 있다.
결국 인간은 1차원적 본능과 욕구처럼 내 마음 같은 관계 하나에 울고 웃고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 두거나 얽매이는 그런 존재들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그런 따뜻한 인연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유의미하다. 우물가에서 물 한잔 건네던 그 온정, 지나가는 과객에게 잠자리를 내어주는 인심,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를 위해 두 개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마음, 잔돈이 없는 낯선 이에게 베푸는 한 잔의 커피마저도 물질만능의 시대에서는 더욱더 빛을 발하는 뜨거운 인간애로 빛을 발한다.
돌아보면 나는 여행길에서 예상치 못한 소중하고 따뜻한 인연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운명론이나 사주의 확률적인 면과 과학적인 분석을 빅데이터로서 생각하지만 크게 궁금하거나 크게 의지해본 적 없는 나로서도 내가 인복이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있는 상황에 할머니가 절에 다녀오다가 뒤를 밟혀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종교금지령을 내리고 자라는 동안 죽 그 정책으로 일관하셨는데 몰래 교회도 가고 성당도 갔던 언니들과는 달리 나는 원래 그다지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친구 따라 교회도 가고 성당도 갔지만 그나마 산에 있기도 하고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이나 과학에 가까운 불교 외에는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도 내가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상인가 할 때가 꽤나 있었다. 삶을 풍요롭게 문화적으로 채워주는 이를 좋은 인연으로 정의한다면 미국에서의 좋은 인연으로 우선 대학 바로 옆에 있던 라면집 사장님과 인근 한식당 '수'의 사장님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음식도 한국을 떠나온 타향의 결핍을 채워주고도 남을 만큼 훌륭했지만 다른 이들이 모르는 각별한 동포애가 넘치는 사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타국에 오래 살아서인지 내가 사기꾼이나 등쳐먹으려는 나쁜 사람이 아닌 것만으로 그이들은 내게 동포애와 인류애를 기반으로 한 적극적인 인간애를 보여주었다. 고향도 아닌 이국의 먼 그곳 을 지금도 내가 따뜻한 기억 속의 공간으로 그리워하는 이유이다. 내가 다시 온다면 기꺼이 남아있는 빈 방을 내어주마던 그곳에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대한 넘치는 애정으로 엉덩이가 들썩이지 않는 나는 다시 가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실망시키지 않는 길치인 나에게 어느 날 혼자 버스정류장에 내리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고야 말았는데 필요에 따라 E가 되는 나는 길을 물어볼 양으로 적절한 타깃을 찾고 있는 와중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친숙한 외모의 이모를 발견하였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면 길을 모를 수가 많으니 곁눈질을 힐끔거리며 국적을 파악하려고 하는데 이모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라고. 그리고는 한국어로 한국사람이에요?라고 다시 물었다. 나는 오늘 미아가 되지는 않겠구나 안도하며 활짝 웃으며 반가움을 표하면서 나의 신원과 상황을 말했다. 이모는 길을 자세히 설명해 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근처에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으니 가서 차도 마시고 남편도 한국인을 보고 싶어 하니 만나고 가라고 하셨다. 거절하기가 애매해서 질질 끌려가듯 따라가면서 속으로는 온갖 불안한 생각, 거친 생각들이 이전에 본 스릴러의 장면들에 겹쳐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아 생각해 보니 이 일은 스프링필드가 아니라 좀 더 대도시 아니 누군가 말하길 미국의 수도권이라고 했나 그런 어바인 말이다. 나는 중심부 시내로는 가지 않고 외곽의 해변들 위주로 다녀서 몰랐지만 나름 미국의 대도시인 어바인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프링필드에는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를 못 봤으니까. 어바인의 우리 숙소도 그랬지만 이모가 사는 아파트는 우리 숙소보다 좀 더 한 단계 위인 고급 아파트였고 우리 아파트도 그랬지만 커다란 수영장이 한가운데 있는 구조였다. 아파트내부는 우리가 지냈던 곳보다 더 넓고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로 이모는 방이 하나 남으니 다음에 오면 꼭 자기 집에서 기거하라고 하며 웰컴 과일과 차를 내어주었다.
상상했던 영화 속의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고 거기서 만난 이모의 남편도 고국을 그리워하고 고국의 사림이 그냥 반가운 재미한국인이었다. 이모는 뉴욕에서 프로그래밍 등의 IT일을 하다가 어느 날 너무나 바쁜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일을 찾던 중 공고에서 우연히 본 이 동네 대학 사서자리에 지원해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컴퓨터전공이라 자료관리 등을 하는 일이라 했다. 낙동강 오리알처럼 낯선 우주의 한 정거장에 떨어진 내가 몇십억 인류 중 한 명 게다가 불법적이지 않은 이런 온정과 친절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을 만난 것이 인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모와는 지금도 메일로 연결이 되어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우연찮은 인연들도 셀 수 없지 많았지만 미국생활을 하는 내 주변에도 절로 미소 짓게 하는 훈훈한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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