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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QUE Nov 02. 2024

금연자의 휴일, 흡연자의 휴일

48. 담배 없는 휴일은 이렇게나 평온하다

금연자의 휴일

며칠 만에 푹 잤다.

한결 가벼워진 몸을 일으켜 편옷으로 갈아입고 양재천으로 나선다. 한라산 등반으로 아직 다리가 성하지 않아 달릴 수는 없고 산책하듯 느릿느릿 걷는다. 따스한 아침 햇살이 머리와 어깨를 토닥이고, 흐르는 물결이 귀를 간질인다. 평온하고 평안한 아침이다. 양재천으로 운동과 산책을 나온 다른 이들의 표정도 안락해 보인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러 맥모닝 세트를 들고 온다. 패스트푸드가 느긋한 아침을 만든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한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이틀 전 배송된 한강 작가 도서 세트를 뜯어 읽는다. 아직 오전인데 살짝 졸립다. 파에서 선잠을 자다 깨다 하다가 책을 덮는다.

얼그레이티를 담은 텀블러와 책을 들고 다시 양재천으로 향한다. 양재천엔 앉아서 책을 읽을 공간이 많다. 햇살을 적당히 막아주는 곳에 자리하고 다시 소설에 집중한다. <작별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휴일 아침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1시간 책을 읽었더니 엉덩이가 아프다. 다시 일어나 걷는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다시 책을 편다.


참새 무리가 재잘거리다 어디론가 날아간다. 팔뚝보다 큰 잉어가 잔잔한 수면에 물결을 일으킨다. 바람결에 메마른 나뭇가지가 살랑거리다 책 위로 떨어지며 느긋한 독서를 방해한다. 그러고 보니 눈이 시린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엔 선글라스를 쓰고 나와야겠다.


책을 덮고 얼그레이티를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흐르는 물결에 비치는 햇살을 본다. 반짝임이 찬란하다. 이렇게 비흡연자의 휴일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흡연자의 휴일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잠들기 힘들고 잠이 들어도 깊게 들지 못한다.

전자담배를 찾아 한 대 피우고 다시 침대로 향한다. 그렇게 밤새 서너 번 뒤척거리며 담배를 피웠다.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나 배가 고픈 걸로 봐서 10시는 넘은 거 같다. 피곤이 짓누르는 어깨를 억지로 뒤척여 침대 밖으로 다리를 내보낸다. 한라산 등반으로 아직 다리가 성하지 않아 통증이 이만저만 아니다. 컨디션이 좋으면 양재천에서 산책을 해볼 요량이었는데, 하루는 더 쉬어야 할 거 같다.


소파에 누워 배달 앱을 켜고 맥도날드 모닝세트를 주문한다. 브런치가 배달되기 전에 연초 하나 피워야겠다. 대충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크록스를 신고 밖으로 나선다. 햇살 때문에 눈이 부신다. 오늘 첫 담배가 날 깨우는 듯하다.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 같고 어깨도 펴지는 것 같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다시 모자를 쓰고 크록스를 신고 엘리베이터를 누른다. 식후땅을 해야 한다. 한 대 피우고 돌라가려다 다시 한 대를 더 빼든다. 한 번 내려오면 담배 두 까치 정도는 펴줘야 한다. 꽁초는 그냥 하수구에 버린다.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오후 2시가 됐다. 세상에서 시간이 제일 빠른 것 같고, 휴일에는 그 시간이 두 배나 더 빨리 간다. 그래도 의미 있는 휴일을 위해 엊그제 배송된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기로 한다. 우선 책을 읽기 전에 한 대 피워야겠다.


다시 책을 펴니 입안에서 구린내가 난다. 흡연자들이 감내해야 할 냄새다. 내 입에서 나는 냄새가 나도 싫은데 남들은 더 싫겠지? 양치질을 하고 다시 책을 편다. 글자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중력도 떨어진다. 처음부터 자살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떠오르는 무거운 소설이다. 휴일의 평온함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책을 덮는다. 다시 담배와 라이터를 챙기고 크록스를 신는다. 이렇게 흡연자의 휴일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금연 48일


변화

담배를 사지 않으니 편의점 가는 횟수가 줄었다. 담배 사러 가서 음료수나 맥주, 와인도 사고는 했는데, 편의점에 가지 않으니 이런 부차적인 지출도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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