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서도 집 걱정에 벗어나지 못하는 나
회사 점심시간에 식당에 갔다.
옆 테이블엔 아버지와 아들 둘이서 밥을 먹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버지는 힘든 막노동을 하고 와 옷은 엉망이었고 아들은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학생 같지도 않아 보이는 분위기였다.
국밥집에서 아버지는 국밥에 소주, 아들은 국밥.
처음 밥을 먹기 시작해서부터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 까지도 부자사이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웃음도 없다. 옅은 미소조차 없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자꾸 그 테이블로 눈이 갔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냥 예전의 내 모습과 자꾸 겹쳐 보였다.
나도 아빠와 단 둘이 있을 일이 생기면 정말이지 입을 한 번도 떼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식이 잘 크기는 어렵단 것을. 그래서 옆테이블에 자꾸만 눈이 갔다.
어두워 보이는 아빠와 아들. 그 아빠는 누구보다 바랄 거다. 우리 아들이 잘 커주길, 성공하길, 나 같은 일을 하지 않길. 하지만..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정말 힘들다는 것을.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도 옛말이고, 그 모든 것엔 다정하고 자상하고 사랑넘치는 부모가 필요하단 것을..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본인이 스스로 생각을 바꾸고 깨우치지 않으면 그냥 그 분위기가 몸에 베이고, 그 집안 분위기가 나의 분위기가 되어 밝고, 건강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며 잘 자라긴 힘들다는 것을 난 안다.
나는 나와 내 동생이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짜증은 일상이고 사람들에게 예쁘게 말하는 법, 가까운 사람에게 더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 깨우친 듯하다. 친구들에게도 내 감정쓰레기통으로 대한 적도 많고 남자친구에게도 화가 나면 막말을 아주 자연스레 일삼았다.
내 동생은 학창 시절에 흔히 말하는 일진이었다고 알고 있다. 딱히 착하게 바른 길로 자라지 않고 있다는 걸 나는 학창 시절에 이미 알고 있었다. 싸움에, 담배에 각종 사고로 엄마아빠는 학교에 몇 번이고 불려 다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깊게 알고 싶지 않았다.
한 날은 부모님께서 제발 동생과 이야기를 좀 해보라고 해서 둘이서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정말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니 양아치가?"라고 한 날이 기억난다.
시간이 좀 흘러 군대를 다녀온 후 동생이 대학을 중퇴하고 중소기업에서 돈을 벌었기에 이 촌구석에 처박혀 있지 말고 그 돈으로 제발 세상 넓은 것 좀 알고 오라고 유럽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더니 거기서 여자나 사귀고, 또 되지도 않게 무시당하는 게 싫다며 물가 비싼 유럽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술을 쏘고, 그런 황당한 짓을 하더라. 그리고는 거기서 사귄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집에 있는 돈 없는 돈 받아서 서울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고.. 내가 바랬던 의미가 전혀 통하지 않았음을..
무슨 말을 해도 자기만의 확신으로 가득 차서 오히려 상대를 설득하려 들고, 돈 무서운지 모르고, 엄마한테 받은 금 목걸이며, 자취하는 원룸 보증금까지 빼 쓰고..
그 원인은 '인터넷 불법 도박'
혼자 타지에 나가 살면서 갑자기 돈을 벌다 보니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혼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는 나와 같은 그런 아이였으니, 또 주변에 그런 도박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보다 보니 자기도 자연스레 빠졌나 보다. 난 그 소식을 듣고 정말 우리 집이 이제 겨우 살만한데 망하겠구나 가슴이 '쿵'하고 떨어졌다.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신랑 몰래 누워서 새벽에도 몇번씩 잠에 깨고 행여나 신랑이 알게 될까 봐 무서웠다. 도박에 빠진 한 사람이 집안을 풍비박산 만든다는 거....... 잘 알고 있기에, 상상만으로도 무서웠고 우리 부모님 얼마 안 되는 재산까지 다 털어먹겠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도박에 중독이 되어서 이제 우리 집 마저 말아먹는 걸까. 사채를 썼을까. 회사도 못다니고 빚으로 칠갑을 해서 폐인이 되는건가. 오만가지 수많은 걱정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다. 정말이지 이렇게 집안 분위기는 무서운 것이구나.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아빠에게 원망의 글을 문자로 쏟아부었다. "그 아빠의 그 자식이라고............"
나는 너무 힘들었으니까..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은데 엄마는 또 아들 걱정까지 두배가 되었고 나는 아빠, 아들에 대한 엄마의 하소연을 미친 듯이 들어주는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되어있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전화로.. 한 번씩 집에 가면 또 시작되는 끊임없는 하소연. 눈물……
외면하고 싶다가도 불쌍한 엄마. 그리고 이제 나이 들어버린 아빠.
우리 집은 언제쯤 괜찮아질까? 결혼을 하고도 친정 소식에 수없이 흔들리고 괴로운 '나..'
몸만 큰 내면은 텅텅 빈 초라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