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에선 행복만 하자..”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by 조지영

시간이 조금 흘러 친구가 생겼다.

한 날은 조별과제를 해야 하는데 어디를 갈까 하던 중 나는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 낮에 엄마가 안계시니 가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갔고 다음 날이 되어 오늘도 또 가도 된다고 하니 한 친구가 내 귀 속삭였다.


"애들이 너희 집은 너무 좁아서 가기가 좀 그렇데."


난 다른 친구 집을 가본 적이 없어서 우리 집이 좁은 지 몰랐다. 다 이런 집에 사는 지 알았다. 그래서 결국 그 날은 다른 친구 집에 갔는데, 그 날 가 본 다른 친구집은 2층 주택에 마당도 있고 엄마는 주택 앞 다른 상가에서 피아노 학원을 하시는 좋은 집이 었다. '아.. 이런 곳도 있구나.' 그 날 처음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우리 집이 정말 좁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간이 조금 흘러 나와 내 동생도 컸으니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으로 부모님도 이사를 가고 싶어 하셨다.


그 당시 내 기억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1,000만원 대였고 새로 가고자 하는 아파트가 3,000만원 대였던 걸로 기억난다. 덜컥 새로운 집을 계약을 했는데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서 엄마,아빠는 한동안 걱정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엄마가 짜증 섞인 말투로 그러셨다.

"이래서 사람이 많이 배워야 된다. 이 집을 팔고 저 집을 계약했어야 하는데, 그런것도 모르고 아무생각없이 일을 이렇게 해버렸다."


나는 엄마의 그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듣고 내가 이사를 가고 싶어서 쫄랐던 것 마냥 엄마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어린 아이인 내가 밤마다 걱정했다.


"이 집이 안팔리면 어떡하지?"

우리 집을 보러 오겠다는 전화가 오면 그렇게 기쁘게 엄마에게 전화를 바꿔주고, 그 사람이 보고 사지 않겠다고 하면 또 엄마 눈치를 살폈다.


결국 돈이 부족했던 우리 집은 아빠가 큰 아버지께 잠시 이 집이 팔릴 때까지 돈을 좀 빌려달라고 힘들게 이야기 했던 것으로 안다. 결국 큰 아버지는 두시간 거리의 본인 집으로 직접 밤에 찾아오라고 했고 동생에게 '차용증'을 쓰게 했다.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아빠는 '차용증'을 쓰면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한다.


난 아빠고 이해가고 큰 아버지도 이해가 간다.

아빠는 배움 없고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와서 회사도 못가지고 '노가다'라는 이름 하에 하루벌어 하루 사는데 내 형이 이렇게 까지 하나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큰 아버지도 이미 그때 당시 자식이 두 명 있고 배우자도 있으니 선뜻 동생에게 돈을 빌려주기엔 힘들었을 것 같다. 더군다나 형이 보기에 동생이 못미더워보이지 않았을까? 그랬으니 그 먼 거리를 밤에라도 오라고 해서 차용증 까지 쓰게 했겠지싶다.


큰아버지댁에 같이 사시던 할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전화와서 "돈도 빌려서 이사하는데 아무것도 사지마라" 라고 했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는 엄마 가슴에 사묻혔는지 수십번, 수백번은 들은 듯 하다.


할머니도 들은 게 있으셨으니 그러지 않으셨을까 싶다.


그렇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마쳤고 원래 살던 집도 팔렸다. 새로 이사간 곳은 그 동네에서 몇 안되는 고층 아파트였고 우리 집은 10층이었다. 나는 내 방이 생겼고 좋았다.


이 집에서는 그냥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빠가 술을 마시는것도, 아빠와 엄마의 부부싸움이 많은 것도 아무도 모르고 그냥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새로운 집에선 행복만 하자…”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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