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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콩닥콩닥 적응기

최종화. 군생활

by 권에스더

아들은 해경이라 작은 배를 탔다.

처음에는 뱃멀미가 심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단다.

다행히 직원이 밖에 나가 멀미약을 사다 주어 일 주간의 고생을 끝으로 적응을 했다.


배가 작아 선임들의 들볶음도 심했고 쓸데없는 시집살이도 심했다. 그 안에서 음식을 해 먹어야 하니 더 그랬다.


배에서 자다 보면 파도가 치는 바람에 굴러 떨어지기 일쑤였다니 마음이 아팠다.

배가 정박하는 곳에는 간식을 팔지도 않아 일주일마다 내가 간식을 사서 보냈다. 그럼 맛있는 것은 선임이 다 먹었다니..... 기가 찼다.

그러고도 "네 부모는 이런 것밖에 못 보내니?"

내가 아들 입으라고 일상복을 보내면 선임이 입었다.

아들이 참지 못하고 욱하면

선임이 " 아쭈, 덤벼보게?" 나는 조마조마했다.

선임 때리고 영창 갈까 봐 전화가 올 때마다 "아들, 참아야 한다. 견뎌야 한다"를 반복했는데 그때 아들은 선임한테 맞고 있었다. 도대체 난 무슨 말을 한 것인가?

참고 잘 맞으라는 말을 했던 사람이 나라는 생각에 한참 한심했다.


태풍이 오면 아들은 목포로 피항을 갔다.

파도에 배가 부서질까 봐 육지로 끌어올려 꽁꽁 묶었다.


아들이 하는 일은 이병이니 밧줄이 끊어질까 봐 밤을 새우며 밧줄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폭풍 속에서 그러고 있던 아들이

"엄마! 내 인생은 뭐야?"라고 물었을 때 할 말이 없었다.

나도 내 아들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름 귀하게 키웠는데.....


몇 달이 지나자 아들은 파출소로 발령이 나서 배를 떠났다. 그런데 파출소 일이 만만한 게 아니었다.

밤새 컴퓨터 화면을 보다가 움직이지 않는 배를 찾아 연락을 취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구조하러 달려가야 하니 밤을 새우는 힘든 일이었다.

배는 화면에 점으로 나타나니 주의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웠다.


컴퓨터화면에 점으로 보이는 배의 움직임을 밤을 새워 지켜봐야 하니 배가 고파 야식을 먹게 되고 야식 때문에 살이 찌고 몸매가 다 망가졌었다.

그런 일을 하다 아들이 전역을 했다.


아들이 전역하고 사일 후에 세월호사건이 터졌는데 그때 해경이 늦게 와서 욕을 먹었다.

욕은 둘째치고 어린 학생이 너무 많이 죽었다.


우리 아들이 감시했다면 좀 나았을 거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목포 쪽을 감시했으니까.

새로 온 신병이 서툴러 빨리 발견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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