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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그리움

7화. 가벼운 하얀 운동화

by 권에스더

우리 집은 오 남매였다.

그 시절은 대부분 형제가 많았다.

그래서 형제끼리 부대끼며 사회생활을 배워갔고 형제끼리 우애도 요즘 아이들보다 강했다.

큰 애들은 자기 동생들을 부모대신 챙겨야 했으니 말이다. 엄마 혼자 힘으로는 부족해서 큰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살피며 자기 할 일을 해나갔다.


그 시절은 중학교 입학시험 고등학교입학시험이 있던 때라 오 남매인 우리 집은 언제부터인가 해마다 언니 오빠 중에 누군가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봤다.


입학시험은 추운 1월 초에 치러졌다.

그 시절의 1월은 요새보다 훨씬 추워 영하 14도 이하로 떨어질 때가 10일은 있었다.

필기시험을 보고 난 다음날이면 추운데 운동장에서 체육시험을 보아야 했다. 지금 같으면 체육관에서 할 텐데 그 시절은 운동장의 언 땅에서 했다.

아이들은 덜덜 떨며 턱걸이, 넓이뛰기, 공 던지기 같은 시험을 봤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그 맘 때 장바구니에서는 꼭 흰 운동화와 호박엿 찹쌀떡등이 나왔다. 그럼 시험 전날이란 의미였다.

난 운동화를 꺼내며 누구 시험이구나를 알았다.

굳이 흰 운동화를 왜 사냐고 엄마한테 물으니 "가벼워서 신고 잘 달리라고 샀다"하셨다.


한 번은 우리 작은 오빠가 중학교시험을 봤다.

작은 오빠가 턱걸이를 못해 시험 전에 긴 대나무를 사다 한쪽은 큰오빠가 잡고 다른 쪽은 언니와 내가 발뒤꿈치를 들고 잡고 연습을 했다.


시험날이 되자 떨지 말고 잘 보라고 엄마 아버지가 당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린 나이인데 게다가 작은 오빠는 작았다.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추운 밖에서 부모들은 애가 타서 떨며 기다렸다.

그런데 어떤 부모는 새벽에 와서 학교이름을 쓴 팻말에 엿을 붙이고 갔다. 추워서 엿도 딱딱하게 굳었을 텐데 그래도 붙여놨다. 대단한 염원과 열정이었다.


우리 작은 오빠한테 "떨리면 조용히 연필을 깎아!" 그럼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다라고 하며 시험장에 들여보냈다.

시험을 끝내고 나온 작은 오빠는 "떨리긴 뭐 떨려!"

라고 했다. 너무 어려 뭣도 몰라서 그랬는지 작은 오빠는 웃으며 돌아왔다.


합격자발표가 신문에 났다.

신문을 보신 아버지는 좋아서 작은 오빠를 데리고 나가 택시를 태워 남산을 돌고 오셨다.

그 시절 택시는 아주 특별한 대우였다.

난 탄 적이 없었다.


작은 오빠가 명문 중학교에 합격하니 온 동네가 부러워했다.

그날 내가 자던 작은 방의 아랫목은 엄청 따끈했던 기억이 있다. 만큼 추운 날이었다.

난 학교 들어가기 전이니 별 걱정이 없었다. 오빠가 남산구경하러 나가자 나는 행복하게 아랫목에 파고 들어갔다.

왠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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