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간판을 책삼아.
우리 동네가 살금살금 바뀌더니 대로변의 집들은 가게가 들어섰다.
언니, 오빠들은 다 학교 가고 없었을 때라 집의 잔심부름은 내 몫이었다. 난 여섯 살이고 동생은 네 살이니 엄마는 나만 시켰다.
그래도 싫은 내색 없이 심부름을 다녔다.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엄마가 수박화채 해 먹게 얼음을 사 오라 하셨다.
그때는 큰 얼음을 톱으로 잘라 파는 가계들이 있었다.
돈을 받아 들고 얼음가게에 갔는데 가게 여닫이 문에 "얼음"이라 빨강 페인트로 쓰여있는 게 보였다. "아, 저게 얼음이란 글씨구나!" 하며 유심히 보았다.
정말 태양이 뜨거워 얼음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새끼줄로 묶은 얼음을 들고 막 뛰어왔다.
어느 날 엄마는 부삼이네 철물점에 가서 빗자루를 사 오라 하셨다. 대로변에 나가 간판을 보니 글자수가 맞는 집이 보였다.
그 철물점에 가니 "부삼이네 철물점"이라고 간판에. 쓰여있었다.
아, 저게 부삼이구나 생각하며 부삽은 좀 다르지...
부삼이는 그 집 아들 이름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한글을 다 읽을 수 있었다."엄마? 저 집은 왜 어름이라고 썼어? 어떤 것이 맞아?" 질문까지 하게 되자 엄마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찌 다 알았냐며 너무 좋아하셨다.
내가 한글을 이렇게 배우고 학교를 들어간 터라 기억 니은 아 야 오요는 학교 들어가서 나중에 배웠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들의 한글도 기억 니은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냥 아들의 이름을 써주었다."이게 네 이름이야!"
우리 아들은 오씨다. 그래서 한번 써봐, 네 이름을!
아들은 삐뚤 삐뚤 그리다시피 하더니 몇 번 쓰자 제법 글씨 같아졌다. 그날 아들은 집의 벽지에다 자기 이름을 다 쓰고 다녔다. 유리에도 썼다.
다음 날이 되자 아들 오자밑에 ㄱ을 하면 옥이야.
또 따라 했다. 거기에 ㄴ을 하면 온이야. ㅇ을히면 옹이야 했더니 금방 많이 따라 했다. 오자 말고 이렇게 쓰면 호야. 그러니 ㅗ의 소리를 이해했다.
며칠 그런 식으로 글씨를 늘렸더니 자기 나름 규칙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난 그 경험으로 한글은 과학적이라 참 배우기 쉬운 언어라 생각한다.
꼬마들도 원리를 금방 파악하니까,...
나도 그렇게 혼자 배웠고 아들도 그렇게 다 배웠으니 말이다.
우리 집에는 ㄱ ㄴ ㄷ ㅏ ㅑ를 쓴 비닐에 싼 큰 벽에 거는 종이는 없었다.
그런 것 없이도 아들은 한글을 다 이해하고 읽고 쓰기를 다했다.
몇 개를 가르쳐주면서 스스로 규칙을 찾아가는 교육방식이 무조건 암기하는 교육방식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주입식보다 훨씬 좋은 교육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배우면 자기 스스로 응용을 할 수 있다.
창의력이 생긴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