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산후 몸조리
독일에선 4.5kg이 넘는 아기를 출산하고 산모는 걸어가 바로 샤워를 하며 개운해한다.
체력들이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독일여자들은 어지간한 우리나라 남자들보다 힘이 세다. 그 나라 여자들은 산후조리가 없다.
아이를 낳고나도 햄과 치즈에 빵을 먹는다.
따뜻한 음식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독일서 아기를 낳은 한국 산모도 샤워를 해야 하는데 그중 한 산모가 샤워 중 기절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동서양의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동양여자들에게는 씻으라는 말을 안 한다.
우리나라는 산후에 몸조리는 필수다.
그래야 출산 시에 바뀐 몸이 정상화된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낳고 삼일 만에 기저귀를 빨았다 하셨다.
난 아들 낳고 한 달을 찬물에 손을 대지 않았는데...
엄마가 대신 다해주셨는데...
더운데 양말도 신고 있었는데...
나 때문에 엄마는 선풍기도 켜지 못했다.
이때는 산후조리원이 없어 대부분 친정엄마가 몸조리를 해주었다.
그런데 엄마는 자식이 여럿이다 보니 몸조리를 못 했다 하셨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이 드는 것은 난 여름 복중에 태어나 찬물이 그리 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같은 여자로서 엄마가 몹시 불쌍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엄마만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왔다.
맑은 슬픔의 샘물이 솟아올랐다.
혼자 손으로 여러 아이를 기르자니 어쩔 수없었다 하셨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나아 기르면서도 엄마는
다섯이나 낳았다.
왜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무남독녀로 자라 외로운 것이 싫어서 그랬다 하셨다.
우리는 외롭지 말라고...
서로 의지하며 살라고,..
그래서 우린 어린 시절이 재미있었다.
지금도 형제가 있어 다행이다.
혼자손으로 다하자니 힘든데도 그 가운데도 우리들에게 괜한 짜증이나 화를 내신 적이 없다.
늘 웃으며 우리를 귀하게 대했다.
"엄마! 우리 때문에 힘들었지?"라고 물으면 오히려 우리에게 "너희가 있어 힘든 줄 몰랐다."
하셨다.
우리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우리 때문에 힘든 줄 몰랐다니...
무슨 말장난 같다.
엄마가 돌아가실 무렵 나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엄마에게 우리들은 희망이자 기쁨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못 이룬 꿈을 강요하거나 하지 않으셨다.
다만 본인이 많이 못 배운 것이 아쉬워 우리들의 능력이 되면 끝까지 공부를 할 수 있게 밀어주셨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다.
대단하고 참 감사한 엄마다.
엄청난 사랑을 받고자란 난 어땠는지...
내 아들에게 어떤 엄마였는지 저절로 돌아보게 된다.
어린 시절 엄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행복했다.
나이 든 지금은 아픔과 슬픔이 가득 찬다.
나 때문에 힘들었을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