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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프니 엄마야

29화. 함 오던 날

by 권에스더

언니가 일어나지도 않고 출근도 안 했다.

엄마는 속상하다며 큰오빠에게 하소연을 하셨다.

"어디서 그런 집에 시집을 간다고 고집을 부리니 속상해 죽겠다!" 하셨다.


큰오빠는 "엄마가 제 고집 못 꺾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러세요!"라 말을 했다.

그때만 해도 난 아직 어리다고 자세한 이야기는 나에게 안 하고 큰 오빠하고 상의하셨는데 언니의 결혼 문제였다.


언니가 사귄 사람이 가난한 집 막내고 시어머니자리를 만나보니 무가내라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온다며 엄마는 너무 싫어하셨다.


고이 기른 딸이 고생이 훤한 길로 간다는데 어찌 보고만 있겠는가...

그래서 언니가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굶고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다고 엄마가 그러셨다.

국민학교 6학년때도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언니는 아침을 굶고 학교를 가버려 엄마가 많이 속상해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어려 언니가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저러다 위 망가지는데~"하며 걱정하시던 엄마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결국 언니 원하는 대로 결혼을 하게 되어 함이 오는 날이 되었다.

그 시절만 해도 함이 오는 날은 온 동네가 시끄럽고 함을 구경하러 친척들도 동네사람들도 왔다.

언니는 고운 치마저고리를 입고 올린 머리를 하고 함을 기다렸고 엄마는 시루떡을 쪄 솥단지에 붙은 시루채 마루에 있는 상위에 올려놓고 한복을 입고 함이 오기를 기다리셨다.


동네에 함잡이가 나타나자 시끄럽기 시작을 했고 함이 빨리 들어오도록 오빠와 언니친구들이 돈이 든 봉투를 들고나갔다.


돈봉투를 깔아야 한 걸음씩 움직이니 언니친구들이 예쁜 척 애교도 떨고 엄마는 동네 시끄럽다며 사정사정하여 겨우 돈 봉투를 밟고 함이 집으로 들어왔다.

함이 들어오자 시루떡 앞에 놓고 절을 하며 언니가 받아왔다.


다른 방에서는 신랑신부친구들이 음식을 먹으며 놀았고 다른 방에서는 함을 열어 동네사람들이 구경을 했다.

그때는 그래서 함에 예단을 많이 넣었다.

보석도 몇 세트씩 넣었다.

누구는 밍크코트도 넣었다 했다.

그런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닌데 구경들을 하며 평을 하니 과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동네에서 시집 잘 간다고들 하였다.

시간이 흐르며 허례허식이 되었지만 그래도 함이 갖고 있는 최소의 기본적인 예의는 좋다고 생각한다.


함 받던 것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엄마는 안 계신다. 보고 싶은 엄마....

함 받던 운 언니는 손녀들을 둔 할머니가 되었다.


요즘은 "함 사세요!"란 말이 없어졌다.

그 말속에 숨은 웃는 얼굴들, 온 동네의 시끌벅적한 그리운 풍경도 따라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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