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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그리움

1화. 어느 여름날의 풍경

by 권에스더

우리 집 뒷마당은 흙으로 되어 있어 여름에 비가 오면 기와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흙이 폭폭 페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열두 군데에서 물이 떨어지는 광경은 더운 여름 시원하게 비가 오면 비 때문에 일어나는 흙내음과 더불어 따라 보이던 진풍경이었다. 그 풍경은 내 머리의 모든 생각을 맑게 씻어주었다.


뒷마당 한구퉁이에는 화단이 있어 분꽃도 나팔꽃도 채송화도 피었다. 맑은 날은 웅크리고 앉아 꽃구경을 하면 나의 작은 가슴속 근심은 씻겨졌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것은 근심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 작은 가슴에도 그날그날의 어둠이 있었으니.....


그 작은 화단이지만 어느 날 거기서 조그만 청개구리도 도마뱀도 나오던 요술램프 같던 화단이었다.

가을엔 꽃씨도 받았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뒷마당 한가운데는 수도가 있고 빨래돌이 있어 엄마는 거기서 빨래를 하셨고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그게 재미있어 보여 동생의 옷을 다 벗겨 엄마처럼 방망이로 두들겨도 보며 빨아서 빨랫줄에 걸었다. 어른이 된 것 같아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그땐 어른이 되면 좋은 줄 알았다.


마당 한가운데 수도 옆에는 등나무가 한그루 있어 여름엔 그늘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 등나무는 꽃은 한 번도 핀 적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늘이 크다며 심심하면 가지치기를 하셔서 꽃눈을 다 자른 것 같았다.

좀 두고 보시지 그럼 우리 집에도 등나무 꽃이 피었을 텐데....

고등학교 때 학교 등나무꽃밑에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추억이 있는 뒷마당을 비 오면 지저분해진다며 엄마가 화단만 빼고 시멘트로 덮고 마당 가운데 물을 받아둘 수 있는 큰 물통도 만들었다.

이젠 비가 와도 흙은 파이지 않았고 처마에 물받이를 달아 물 떨어지는 것도 볼 수 없었다.

비가 만들어주는 음률은 사라졌다.

그저 빗물통을 통해 빗물이 꽐꽐 시끄럽게 쏟아졌다.


무엇인가 쓸쓸해진 난 물통에 금붕어를 키우자고 했. 엄마가 흔쾌히 허락하시며 까만 금붕어 빨간 금붕어 여러 마리를 사다 넣어 주셨다.


그때부턴 화단과 금붕어 보는 재미로 지냈다. 물론 밖에 나가 노는 시간도 많았지만.

까만 금붕어는 눈이 동그란데 툭 튀어나와 있었고 몸 전체가 까고 반들반들했다.

빨간 금붕어의 눈은 그리 튀어니와 있지 않았지만 둘 다 지느러미는 잠자리 옷같이 생긴 것이 무척 화려했다.


지금 기억해 보면 요즘처럼 따로 먹이를 준 기억이 없다. 그럼 다른 사람이 주었나?

난 예뻐만 했는데 죽지 않았다. 뭘 모르던 때이다.

나만 먹었으니....


난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그 작은 뒷마당은 언제나 포근함과 행복을 주었다. 나만의 꿈의 정원이었다.

유럽의 정원처럼 교한 관리와 굉장한 조각상도 없지만 난 거기서 마음의 작은 상처도 치유하고 기쁨을 얻고 꿈을 키웠다.


지금도 작은 어항에서 물고기를 보며 행복하고 작은 선인장의 꽃에서 함과 무한 행복을 느낀다.

새끼 물고기는 나에게 어린 시절 행복을 불러일으키며 큰 행복감을 준다.


사소한 것이 주는 행복은 굉장하다!

어린 시절은 그것이 행복인 줄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행복은 굉장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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