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뒤돌아보면 그리움

3화. 요즘 보기 힘든 한의사 아저씨

by 권에스더

이렇다 할 간식이 없던 시절 엄마들은 아이들의 간식을 손수 만들어 주었다. 어떤 집은 식빵기계를 사기 시작했는데 우리 엄마는 기계가 비싸다며 사지 않았다. 기계를 설명하며 식빵을 샘플로 만들어주던 아저씨도 이집저집 다녔다. 그럴 때면 동네 아줌마들이 구경 왔다. 구워 나온 식빵도 보고 식빵맛도 봤지만 엄마는 별로라 했다.

난 괜찮은 것 같았는데....


여름이면 우리 엄마는 효모를 사용하여 부풀린 밀가루로 찐빵을 만들었고 겨울이면 찹쌀떡을 만들었다. 찹쌀떡은 오래 두어 굳으면 구워 먹으면 또 다른 별미였다.


그때는 여름이라 찐빵을 만들어 작은 방 다락에 올려놓았다. 나는 아껴 먹느라 하루에 한 개씩만 먹었다. 그런데 그날은 하나가 더 먹고 싶어 큰오빠한테 "나 좀 다락에 올려줘, 오빠! 찐빵 하나 더 먹을래." 큰오빠는 나를 번쩍 들어 올려 다락에 올려 주었다. 나는 얼른 찐빵을 하나 잡고 내려주기를 기다렸는데 오빠는 내가 다락에 올라간 줄 알고 나를 놓았다.


나는 그대로 떨어졌고 찐빵은 저리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다친 곳을 살펴봤지만 피가 나거나 하진 않았는데 오른손을 쓸 수가 없었다. 떨어지면서 오른팔이 몸에 깔린 것이다.


밥을 먹으려니 숟가락 젓가락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왼손으로 겨우 밥을 먹고

밖에 나가 동네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은 어지간하면 놀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못 놀면 진짜 많이 아픈 것이다.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내 동생이 나를 찾아 나왔다.

"누나! 엄마가 침 맞으라고 들어오래!"

한의사 아저씨가 집에 들르신 것이다.

난 무서워서 싫다고 말을 했지만 동생은 또 왔다.


난 할 수 없이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아저씨가 내 팔을 보더니 "삐었구나!" 하시더니 내 왼쪽 발등에 침을 놓았다.

"아픈 건 오른팔인데요?" 아저씨는 "아픈 곳은 건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시더니 발등에 침 두대를 꽂았다.


별로 아프진 않았고 피가 나지도 않았다.

"아저씨! 피도 안 나요?" "침자리를 잘못 잡으면 피가 나는 거야!"


침을 빼고 나니 오른손이 움직여도 아프지 않았다.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아침은 왼손으로 먹었는데 저녁은 오른손으로 다시 먹기 시작했다.

너무 신기해서 이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이후 아저씨처럼 침을 놓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요즘 한의원에 가면 침도 일정 깊이로만 놓게 침에 끼는 통들이 있다. 깊이를 의사가 조절하질 않고 정해진 대로 놓는다.

한의사들이 맥으로만 알아내지 않고 X ray를 찍고 초음파도 찍는다.

한의학의 퇴보인 것 같다.


그때 아저씨는 단침 장침등 종류도 다양했고

깊이도 조절하고 어떤 때는 침 머리를 긁으며 물리적 전기적 자극도 발생시켰다.

그시절 침머리는 가는 줄을 돌돌 돌린 무늬가 있는 은침이었다.

아저씨는 스승을 따라다니며 십여 년을 배웠다했다.


우리 집은 그 아저씨한테 침 맞으러 오는 사람 한약 지으러오는 사람으로 언제나 사람들이 와있었다. 아저씨가 언제 온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혹시 하며 기다리던 사람이 많았다.


우리 작은 오빠도 중학교 때 축농증에 걸려서 병원에선 수술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저씨가 지어준 한약으로 다 나았다.


아저씨의 약은 효과가 좋았다.

그래서 기다리던 환자들도 많았지만 아저씨는 자기 마음이 내킬 때만 오셨다. 돈 버는 것에 초연했던 것 같았다.


언제는 한 달이 넘도록 오시지 않았다.

한참 후 다시 들리면 지방 다른 도시에서 지냈다했다. 전국을 돌아다녔다.

방랑자 같은 삶을 살았지만 의술은 뛰어났던 아저씨!


왜 자신의 방랑병은 못 고쳤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아저씨가 90세 넘어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이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리에 찾아오셔서 중환자실에서 의식도 없던 아버지께 침을 놓고 괜찮을 거라며 떠나셨다.


다행히 아버지는 깨어나셔서 30년을 더 살고 돌아가셨다.

그 후 아저씨 소식을 듣질 못했다.

엄마는 연세가 많아 돌아가셨을 거라 하셨다.

가끔씩 생각나는 아저씨, 내가 본 한의사 중에 최고란 생각이 든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03화뒤돌아보면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