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11. 미키17]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존재였던 미키마우스가 자취를 감춘 지도 꽤 오래, 디즈니랜드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미키가 나왔다고 떠들썩했다.
미키 17, 봉준호, 공상과학, 복제인간 등.. 네이버 뉴스 한켠에 서성이던 단어들이 한데 웅크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겠다 어서 가서 보겠노라, 한밤중의 소란처럼 용산시지비는 미키를 만나러 온 이들로 북적였다. 내가 죽던 날을 보고 교통사고가 나서 정말 죽을 것처럼 신경이 흔들리는 하루를 보냈던 과거 트라우마로 용산 영화데이트는 묻어두었는데, 참 오랜만에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모든 삽입곡을 들으며 나왔다.
트와일라잇에 나온 넘버가 있어 반가웠지만 내용에 몰입한 탓인지 이상하게 일주일여 지난 지금 음악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국 전통예술인 계속해서 마스크가 바꾸는 경극처럼 미키는 새로운 자기 자신을 마주하며 변이된 기억 속에 몇 개월, 한 달, 몇 주, 하루, 몇 시간을 살아낸다. 언제나 같을 줄 알았던 자기 자신이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나타났을 때, 화도 짜증도 낼 수 없는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다가 결국 그동안 자기가 믿어온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미키의 연인 나샤가 자신이 순한 맛이든 매운맛이든 어중간한 맛이든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해 주었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다시 이해하고 바라보게 되는 장면, 그 씬에서 보이는 미키의 눈빛은 아주 복잡하게 다가온다.
<그녀, 안드로이드>라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SF시리즈에서 그녀가 가족을 위해서라면 나를 희생시킬 수 있다며 자기 생명을 내던져 그들을 지켜낸다. <미키 17>에서 역시 미키 18도 자신을 담보로 가족과도 같은 미키 1~17의 행복을 빌어주며 퇴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
<미키 17>를 되뇌며, 내가 믿고 있는 나의 모습은 아마도 나를 믿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갸륵한 마음이지만 우리는 각자의 필터를 다 다른 때에 맞춰서 달리 가지고 바라보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중에 마주한 현실에 넘어져서 허우적댄다.
미키는 익사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 씩씩하게 일어서려면 인간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교만과 자만에 빠진 지금의 세상에서 용기있게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밝게 떠오를 때 그 이후가 두려워 어둠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하루 걸러 하루 감사보다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사는 지구생명체인 우리는 정말 작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낮추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눈을 바라보고 손을 마주 잡고 발맞춰 걷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