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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거리 알 수 없음

[log10. 드라이브 마이 카] 바냐 아저씨, 우리 살도록 해요

by 쿤스트캄


나는 영화를 볼 때 특별한 개입이 있지 않는 한 제목이나 혹은 포스터이미지에 이끌려 선택하고 보는 방식을 취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도 엔딩 크레딧 나올 무렵 알아차렸다. 처음에 의문을 품은 영화 제목이 왜 영어인지에 대한 이유도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당시의 기억과 익명의 추천으로 다시 영화를 꺼내 주행을 해보았다.


영화에서 가후키와 아내 오토는 보기 좋은 커플이다. 직장, 직업, 일상에 대해서 편안하게 생각을 나누고 표현도 잘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아닌가. 하지만 유별나지 않게 바람을 피우고 그걸 알게 된 가후키 역시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아내가 세상을 뜨지만 남편인 가후키는 바라만 볼 뿐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결코 드러나지 않아서 보는 내내 불편하고 어렵고 힘들다. 일본영화가 대부분 촉촉 혹은 건조를 일삼는다지만 보고있는 스크린이 바위처럼 느껴진다. 감정 없이 텍스트를 읽는 행위가 눈앞에서 쉽게 무의미를 보는 행위처럼 보인다.


가후키는 달리는 차안에서 아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며 대사 연습을 하는 듯 혼잣말을 하는데, 처음에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려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감정 표현하는 연습을 한없이 하는 장면이었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다.


차가운 냉탕에서 마침내 온실처럼 느껴지는 차안, 마음의 언어가 교통하는 공간으로 보여지는 장면들.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오롯이 따뜻해지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곳곳에서 툭툭 나를 건드린다. 영화 속 가후키가 우리 모두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코로나 시절, 마스크를 쓴 사람도 보이고 아닌 경우도 있었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이 영화를 보겠다고 백신 부작용으로 낑낑대면서도 얼마나 열심히 찾아갔는지 모른다. 거리두기를 하고 멀리 띄어쓰기 해가며 앉아 고요하고 조용하게 아주 오랫동안 예술을 누린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훗날 빌어먹을 기억력을 탓하지 않기 위하여 비하인드를 덧붙이자면, <열정>을 옆에서 같이 본 그녀의 눈빛을 보고 단숨에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척 나와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러 가서 다시 본 그녀가 기억이 난다. 최근 여주가 되어버린 그녀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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