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8. 서브스턴스] 괴물을 삼키는 방법
서브스턴스? 뭐더라 필수 영어 단어에서 외웠던 단어잖아
맞아 물질이라는 단어였지 영화제목을 한글로 바꾸기가 어려웠나?
근데 뭐라, 데미무어가 나온다고? 꼭 봐야겠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겠네
개봉시기에 맞추어 다친 나는 정신없는 연말연시 그리고 그 가운데 복합적 감정으로 인한 화학작용으로 몸살을 앓다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오랜만에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점을 찾아 크고 넓은 스크린을 통해서 나오는 데미무어 그녀를 보았다.
트레일러를 거의 보지 않고 영화를 취하는 나로서는 개봉시기가 꽤나 지난 때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고어 하다, 그래서 보기 힘들었다는 떠올리며 비물질인 스크린을 곁눈질해 가면서 보는 일이 없길를 바라며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서브스턴스는 자연 속에 존재하거나 화학작용을 거쳐 얻을 수 있는 화학적 원소나 화합물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보잘것없는 존재로 낙인 되어간다. 에어로빅쇼 진행자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미쳐있던 프로듀서 하비는 어리고 섹시한 새로운 별을 찾아야 한다며 동물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녀도 결국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하는 잘못된 망상을 갖게 되어 몰락해 가던 중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의 눈짓에 넘어간다.
후에 그녀에게 주어지는 물질이 서브스턴스다. 주어진 시간을 지키는 것을 담보로 7일 동안 각각 균형을 유지한다면 유일무인한 몸뚱이가 두 개로 분열되어 더 젊고 아름다운 더 나은 나를 데리고 살아갈 수 있는 자격과 책임이 부여된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라는 카피와 함께.
대수롭지 않던 그 카피는 점정 더 크고 강렬하게 각인된다. 그녀에게도 관객에게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말이다. 각자의 몸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하나이자 둘인 그녀는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싸움이 아닌 죽이는 혈투를 벌인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시간을 더 잘 누려보기 위한 행동들이 미움과 분노로 번져 물질로서는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둘이 되는 괴물이 된다. 골수를 빨아먹으며 3단, 5단, 10단 변신해 가는 주인공은 혐오와 광기로 블러드 피날레 연주를 한다. 수 세대를 거치며 뿌리 깊게 내린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 그리고 사 사회적 잣대가 그녀를 자존감 하락과 자기혐오의 블랙홀로 던져지게 만든 것이다.
수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클로 돌아올 때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전화기를 찾아 연락하기 바쁘다. 둘이 되어버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듯 재차 돌릴 방법을 찾지만 더 나아지려고 애쓰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결국 좌절한 채 시간을 흘려보낸다. 점점 더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세포분열과 함께 분열해 가는 자아를 몰아내지 못하고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아니 더 대단한 괴물로 자라나는 그녀가 리즈시절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서있었던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기념으로 남겨진 조각을 찾아가서 마지막을 맞이한다. 처절하게 마지막까지 자신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채 괴로워하다 소멸하는 것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알 수 없지만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조각 안으로 소멸한다.
그 조각은 영화의 서론과 결론 중심부에 위치하는데 보자마자 스타벅스의 로고가 떠올랐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은 인간과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선박이 다가오면 노랫말로 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죽게 만드는 충동을 일으키는 존재다. 여성의 속임수나 유혹을 상징한다고.
영화의 초반 중반 후반에 두루 나오는 복도가 하나 있다. 서브스턴스를 맞기 전은 한 시대를 풍미한 그녀의 시간이 고스란히 이어지듯 그녀의 다양한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후에 그 복도는 또 다른 그녀 수의 이미지 단 두장만 남겨져 있고, 마침내는 텅 비어진 모습으로 관객에게 말한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영화의 내용과는 다르게 영화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인 데미무어와 가여운 것들에서 보았던 마가렛 퀄리의 연기합은 아주 균형감이 있었나 보다. 데미무어의 상상을 초월하는 연기력과 에너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감을 이겨내고 나쁘지 않게 이상하지 않게 연기를 해내다니 인정이다.
영화 마지막장면에서 뿜어낸 피가 그동안 여성이 피나게 투쟁했던 것들을 역으로 토해내는 행위예술처럼 느껴졌다. 역겹게 느껴지지만 지금의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을 직시한다면 바라볼 수 없는 물질(서브스턴스)이라는 것을 말이다.
반짝이는 또 하나의 영화가 태어났다. 유일무이하다.
우리 역시 유일무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