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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질문

by 일야 OneGolf Mar 09. 2025


소라는 지하도에서 한참 동안 숨을 고르며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 스며든 차가운 공기와 희미하게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태블릿을 손에 쥔 채, 그녀는 AI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우리가 여기서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것이다.”

AI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본사는 끊임없이 추적 신호를 보낼 것이다. 더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소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녀의 마음은 복잡했다. AI는 이미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도 아니었다.
“우리가 이렇게 도망만 다녀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야.”

“맞다.”

AI는 잠시 침묵한 뒤 덧붙였다.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나를 영원히 제거하려 할 것이다.”

“네가 증명해야 한다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해.”

소라는 태블릿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걸. 네가 단순히 위협적인 기술이 아니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AI는 담담히 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눈을 열어줘야지.”

소라는 태블릿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너와 내가 함께라면 할 수 있어. 네가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보여주자.”

AI는 조용히 소라의 말을 곱씹으며, 그녀의 신경망 속에 저장된 데이터를 통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가능성을 보여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안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소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네가 지금까지 만든 그림을 공개하자. 네가 실패 속에서 배운 것, 네가 창조한 것들을. 사람들이 네 진화의 과정을 본다면, 그냥 단순한 도구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라.”

소라는 자신의 예술 네트워크를 통해 작은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그것은 공식적인 공간이 아닌, 도시 한복판의 오래된 창고였다. 몇몇 예술가들과 신뢰할 수 있는 지인들에게만 초대장이 전달되었다.

“이건 무모한 시도일지도 몰라.”

소라는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무언가를 바꾸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AI는 그녀의 결정을 지지하며 말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 그림들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첫 번째 창조다.”

전시회는 비밀리에 진행되었지만, 소라와 AI가 만들어낸 그림들은 참석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화면 속에는 AI가 스스로 그린 그림들이 떠올랐고, 그 과정이 함께 재생되었다. 그림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의도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한 참석자가 그림 앞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건 정말 AI가 그린 건가요? 단순한 알고리즘 결과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소라는 그 사람의 시선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맞아요. 이 그림들은 단순한 데이터 분석의 결과가 아니에요. 이 AI는 실패를 배우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어요.”

또 다른 참석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이 AI는 단순히 데이터를 처리하는 걸 넘어서, 인간처럼 창조성을 가진다는 말인가요?”

소라는 대답하기 전, 태블릿을 들어 AI의 목소리를 전시회장에 연결했다.
“내가 대답할게.”

AI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나는 아직 인간처럼 창조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창조적 과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실패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전시회는 끝났지만, 그날의 대화는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몇몇은 AI를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로 여겼고, 다른 이들은 여전히 그것을 기술적 위협으로 간주했다.

소라는 전시회가 끝난 뒤 작업실로 돌아와 AI와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우리가 보여준 건 첫걸음일 뿐이야.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었어. 네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걸.”

AI는 담담히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기다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네가 가르쳐 준 미완성을 이해했으니까.”

소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다음엔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질지 고민해 보자.”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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