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마술사들
아스팔트 훈련이 시작된 지 일주일.
선수들의 손은 굳은살 위에 다시 물집이 잡혔고, 아이언 세트들은 이미 전투에서 돌아온 병기처럼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만큼은 맹수처럼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그런 그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한 곳은 화려한 명문 골프장이 아니었다.
강원도 산골, 경영난으로 폐장 절차를 밟고 있는 '대관령 퍼블릭 9홀'이었다. 관리가 안된 페어웨이는 발목까지 오는 잡초로 가득했고 그린은 흙바닥이 보일 정도로 거칠었다.
"오늘 훈련은 여기서 한다."
백강후가 버스에서 내리며 지시했다.
그때, 클럽하우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낯선 무리가 그들을 맞이했다. 화려한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옷을 입은, 석천 골프단과는 대조적인 깔끔한 모습의 선수들이었다.
"이게 누구신가. '부정행위자' 백강후 씨 아니신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강치현이었다.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인 '골든게이트 골프단'의 메인 코치이자, 과거 백강후를 나락으로 밀어냈던 배후 세력의 하수인 중 한 명이었다. 그들 뒤에는 협회 관계자 몇몇이 흥미롭다는 듯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석천건설이 돈이 없나 보군. 이런 쓰레기장에서 훈련을 시키다니. 아니면... 이 쓰레기장에 어울리는 수준의 선수들만 모아놓은 건가?"
강치현의 비웃음에 강건한이 주먹을 꽉 쥐었지만 백강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심하게 강치현을 지나치며 선수들에게 말했다.
"잡음 섞지 마라. 오늘 과제는 '숲길 개척'이다. 4번 홀로 이동해."
4번 홀은 티잉구역 정면에 거대한 침엽수림이 빽빽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정상적인 공략으로는 절대 한 번에 그린 근처로 갈 수 없는 '기역(ㄱ)'자로 꺾어진 좌도그렉 홀이었다.
"유시영, 나와."
백강후가 숲의 우측 끝자락, 거대한 바위가 튀어나온 사각지대를 가리켰다.
"저 바위 뒤에서 90도 왼쪽으로 꺾어서 그린 입구까지 보내봐. 숲을 넘기는 건 금지다. 숲 사이의 '통로'를 이용해서 굴절시켜 봐라."
강치현이 코웃음을 쳤다.
"백 코치, 애들 잡으려고 작정했군. 저기서 90도로 꺾으려면 공에 얼마나 강한 스핀을 걸어야 하는지 몰라서 그래? 샤프트 부러뜨릴 일 있어?"
하지만 샷을 준비하는 유시영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아스팔트 위에서 기름을 밟으며 쳤던 그 공포의 감각을 떠올렸다. 바닥은 거칠고 공은 풀 속에 잠겨 있다.
'여기서 공을 90도로 휘게 만들려면...'
유시영은 클럽 페이스를 극단적으로 닫았다. 스탠스는 목표 지점보다 한참 오른쪽을 향했다.
깡—!
날카로운 타구음과 함께 공이 숲의 오른쪽 끝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저 병신, 숲으로 처박네!"
강치현의 제자들이 비웃는 찰나, 공이 허공에서 마법처럼 왼쪽으로 급격히 휘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스핀을 먹은 공은 빽빽한 나무들 사이의 단 1미터 남짓한 틈새를 화살처럼 파고들더니 페어웨이 끝자락 바위에 부딪히는 듯 다시 한번 굴절되어 그린 앞까지 굴러갔다.
강치현의 웃음소리가 뚝 멈췄다. 협회 관계자들의 카메라는 그 믿기지 않는 궤적을 쫓느라 바쁘게 돌아갔다.
"묘기라고 했었나?"
백강후가 굳어버린 강치현을 돌아보며 낮게 읊조렸다.
"이건 묘기가 아니라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가는 개척법이다. 너희처럼 잘 닦인 매트 위에서만 공을 치는 인형들은 평생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마법이지."
유시영의 굴절 샷에 잠시 굳어있던 강치현이 이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과연, 서커스단 코치답군. 백강후, 여전해. 사람 홀리는 잡기술 하나는 인정해 주지. 그런데 말이야..."
강치현이 자기 팀 선수들이 들고 있는 수천만 원 상당의 커스텀 클럽들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골프는 서커스가 아니야. 최첨단 장비와 완벽한 관리가 만들어내는 정교한 스포츠지. 이런 잡초 밭에서 운 좋게 공 하나 꺾어 들어갔다고 네놈이 진짜 코치라도 된 것 같나?"
강치현은 옆에 서 있던 협회 관계자들을 힐끗 보더니, 백강후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자신 있으면 내기 한 판 어때? 마침 협회 분들도 계시니 증인이 되기 딱 좋겠군. 저기 7번 홀, 파 5인데 거기가 아주 기가막히지. 거기서 우리 애들이랑 네 '광대'들이랑 홀 매치를 하는 건 어때?"
백강후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내기라...?"
"그래. 대신 판이 커야 재밌지 않겠어? 네가 지면 그 가짜 코치 자격증 반납하고 골프계에서 영원히 꺼져. 석천건설 팀도 오늘로 해체하는 거다. 어차피 쓰레기통에 들어갈 팀, 내가 좀 일찍 치워주겠다는 거야."
석천의 선수들이 분노로 들끓었지만 백강후는 오히려 평온했다. 그는 강치현의 제자들이 메고 있는 화려한 백들을 훑었다.
"좋다. 대신 우리가 이기면?"
강치현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이길 리가 없겠지만, 원한다면 내 외제차 키라도 줄까?"
"아니, 차는 필요 없고. 너희 애들 백이랑 그 안에 든 채들, 그리고 입고 있는 그 비싼 옷들까지 전부 다 내놓는 건?"
백강후의 눈이 번뜩였다.
"내 애들이 훈련하느라 채가 다 망가졌거든. 네놈들이 가진 그 번지르르한 장비들, 우리 애들 연습용으로 딱 좋겠어. 어때, 내 인생 시궁창에 처박는 값 치고는 싸지 않나?"
강치현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감히 '메이저 팀'의 장비를 연습용 취급하다니.
"... 좋아! 받아들이지! 대신 이 경기는 우리가 치던 방식이 아니다. 이 쓰레기장에 어울리는 거친 룰로 가주지."
강치현은 자신이 미리 봐둔, 라이가 최악인 구역만을 골라 경기 지점으로 지정하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