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보이지 않는 설계자들

by 일야 OneGolf

​외부는 백강후의 영상으로 시끄러웠으나 석천건설 골프단 본부는 고요했다. 하지만 그 정적은 휴식이 아니라 정밀하게 돌아가는 기계의 가동음과 같았다.


​운영팀장 박석진은 서류 뭉치를 훑으며 스카우트 팀장 이문식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코치님이 전권을 주며 뽑으라고 한 리스트입니까? 이건 뭐... 골프단이 아니라 외인구단을 만들 작정이시네요."


​이문식이 건넨 리스트에는 이름조차 생소하거나 오히려 골프계에서 '기피 대상'으로 찍힌 이들이 적혀 있었다.


​서한결 : 주니어 시절 천재로 불렸으나 입스(Yips)에 걸려 퍼팅 한 번에 10분을 망설이는 선수


​오두석 : 장타는 국내 최고지만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매 대회마다 구설수에 오르는 문제아


​윤새봄 : 가난한 형편 때문에 독학으로 골프를 배운 검증되지 않은 무명


​"박 팀장님, 코치님이 그러시더군요. '완성된 놈들은 자기 등 뒤에 숨겨진 칼을 볼 줄 모른다. 우리가 찾는 건 그 칼에 찔려본 놈들이다'라고요."


​이문식의 눈은 번뜩였다. 그는 지난 일주일간 전국을 돌며 화려한 스펙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선 절박함'을 기준으로 원석들을 골라냈다. 백강후가 지시한 대로 '결핍'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연료라는 사실을 그는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 시각,

데이터 팀의 사무실은 거대한 서버실처럼 변해 있었다.


백강후가 망치로 찌그러뜨린 클럽들이 데이터 팀장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고성능 3D 스캐너로 변형된 헤드의 물리 수치를 계산해 모니터에 띄웠다.


​"코치님은 단순히 채를 부순 게 아니야. 이건 정교한 교정 기구다."


​데이터 팀원이 의아한 듯 물었다.


"헤드가 찌그러졌는데 교정이라뇨?"


​"봐. 무게 중심을 아주 미세하게 토(Toe) 쪽으로 옮겨놨어. 이렇게 되면 일반적인 스윙으로는 공이 무조건 밀려 나가지. 하지만 이걸 똑바로 보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선수들은 손목의 미세한 각도를 스스로 찾아내게 돼. 코치님은 지금 장비를 망가뜨린 게 아니라 선수들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릴 '강제 교정 장치'를 만든 거야."


​데이터 팀은 이제 백강후의 무식해 보이는 훈련을 수치화하여 선수들이 어느 지점에서 임계점을 넘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기록원이 아니었다. 백강후가 던진 화두를 과학으로 뒷받침하는 '전략 참모'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운영팀 역시 분주했다. 삭감한 예산은 선수들의 식단과 물리치료 시스템에 집중 투자되었다. 화려한 의전과 홍보 대신 선수들이 24시간 훈련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스카우트 팀장님. 그 리스트에 있는 애들 당장 컨택해서 데려오세요. 연봉 협상은 제가 어떻게든 맞추겠습니다. 코치님이 아스팔트 바닥 닦아놓고 기다리신답니다."


​박 팀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담장 안의 석천은 서서히 '하나의 유기체'로 결합되고 있었다.


백강후라는 뇌를 중심으로 운영팀이라는 심장과 스카우트라는 혈관이 힘차게 고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실력만이 전부인 그들만의 성역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석천그룹 본사 꼭대기 층에 위치한 회장실.


​석천건설의 창업주 학수 회장은 창밖의 화려한 시티뷰 대신 집무실 한구석에 마련된 작은 퍼팅 연습기를 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스마트폰 하나가 들려 있었고 화면 속에는 대관령에서 찍힌 유시영의 굴절 샷 영상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허허... 이놈 봐라."


회장의 입가에 깊은 주름을 따라 흥미로운 미소가 번졌다. 그때,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고서를 올렸다.


​"회장님, 골프단 운영 보고서입니다. 백강후 코치가 예산의 70%를 훈련 시스템 개조에 쏟아부었습니다. 홍보비는 전액 삭감했고, 심지어 선수 부모들의 출입까지 봉쇄했습니다. 지금 협회와 스폰서들 사이에서 불만이 상당합니다."


회장은 보고서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퍼터로 공을 툭 쳤다. 공은 정확히 홀컵 중앙을 때리고 멈췄다.


​"불만? 그놈들이 언제는 우리 팀에 만족한 적 있었다더냐? 만년 꼴찌팀에 홍보비 쏟아붓는 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 차라리 그 돈으로 아스팔트를 깔든 기름을 붓든, 백강후 그놈이 하고 싶은 대로 두게."


​"하지만 회장님, 기업 이미지가..."


​"이미지? 석천(石泉)이 무슨 뜻인지 잊었나. 바위를 뚫고 나오는 샘물이야. 바위가 찢어지는 비명도 없이 어떻게 샘물이 터지겠어?"


회장은 화면 속 백강후의 무심한 뒷모습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내가 그놈을 데려올 때 약속했지. '네가 세상을 부수면, 나는 그 파편을 치워주겠다'라고. 지금 아주 잘 부수고 있어. 아주 시원하게 말이야."


회장은 비서실장에게 리스트 하나를 건넸다. 백강후가 요청했던 '결함 있는 선수들'의 최종 영입 명단이었다.


​"이 친구들, 뒷조사 싹 해서 연루된 채무나 법적 문제 있으면 조용히 정리해 줘. 백강후가 오로지 '골프'로만 이놈들을 조질 수 있게 판을 깨끗하게 닦아놓으란 소리야."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자 구 회장은 다시 퍼터를 잡았다.


​"강후야. 네가 터뜨릴 샘물이 얼마나 비린내가 날지, 내가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그것은 기득권의 눈치를 보지 않는 거대 자본이 백강후라는 날카로운 칼날이 세상을 제대로 베어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완벽한 신뢰'의 증거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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