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건설 골프단 연습장에 낯선 공기가 감돌았다. 기존의 김인아, 유시영, 강건한은 이제 막 아스팔트와 기름진 바닥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지만, 오늘 나타난 세 명의 불청객은 존재감부터가 달랐다.
스카우트 팀장 이문식이 데려온 이들은 백강후 앞에 나란히 섰다.
가장 왼쪽에 선 서한결. 주니어 시절 '퍼팅의 신'이라 불렸으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입스로 인해 짧은 퍼팅 하나에도 온몸을 발작하듯 떠는 청년이다. 그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골프채를 쥔 손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가운데는 오두석. 덩치부터가 남다른 그는 국내 최장타 기록 보유자였지만, 갤러리의 야유를 참지 못하고 골프채를 휘둘러 자격정지를 먹은 전과가 있다. 거친 숨을 내뱉는 그의 모습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곰 같았다.
마지막은 윤새봄. 낡은 셔츠에 때 묻은 골프 장갑을 낀 그녀는 정식 레슨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캐디 출신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이곳에 모인 누구보다 차갑고 단단했다.
"인사들 해라. 오늘부터 너희와 함께 아스팔트를 닦을 신입들이다."
백강후의 짧은 소개에 강건한이 코웃음을 쳤다.
"코치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신 거 아닙니까? 입스 환자에, 사고뭉치에, 이름도 모르는 캐디라뇨. 여기가 무슨 자선 단체입니까?"
그때, 오두석이 강건한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압도적인 위압감에 강건한이 주춤했다.
"자선 단체인지 아닌지는 네 대가리 위로 내 공이 날아가는 거 보면 알게 될 거다. 조그만 게 입만 살아서는."
"뭐? 이 새끼가!"
연습장이 순식간에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변했다. 하지만 백강후는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 소방 호스를 던져놓았다.
"싸울 힘 있으면 이거 잡아. 오늘 훈련은 '폭풍 속의 고요'다."
데이터 팀장이 신호를 보내자 대형 펌프가 가동되며 소방 호스에서 엄청난 압력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조준점은 선수들이 서 있는 타석이었다.
"눈도 뜨기 힘든 물폭탄 속에서도 아까 내가 말한 '결함 있는 채'로 100미터 앞의 표적을 맞춰 봐. 신입이고 기존이고 상관없다. 오늘 숙소엔 성공한 자만 들어간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선수들은 순식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강한 수압 때문에 어드레스를 잡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서한결은 물줄기가 닿자마자 손을 벌벌 떨기 시작했고 오두석은 짜증 섞인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 윤새봄만이 묵묵히 빗물을 닦아내며 공 앞에 섰다. 그녀에게 이 정도 시련은 가난이라는 폭풍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했다.
백강후는 차갑게 젖어가는 선수들을 보며 구 회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바위가 찢어지는 비명도 없이 어떻게 샘물이 터지겠어?'
이제 이 찢어지는 비명 속에서 진짜 샘물이 터져 나올 차례였다.
쏟아지는 소방 호스의 물줄기는 단순한 방해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수벽(水壁)이었고 선수들의 시야와 평정심을 완전히 앗아가는 폭력이었다. 물보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자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고 그럴수록 샷은 더 엉망이 됐다.
기존 멤버인 유시영은 떨리는 손으로 그립을 닦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장갑은 이미 물에 절어 미끄러웠고 백강후가 망가뜨린 채의 무게중심은 평소와 전혀 달랐다.
"이건 안 돼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요!"
유시영의 비명 섞인 항변은 거센 물소리에 파묻혔다.
그때, 신입 오두석이 유시영의 어깨를 밀치며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장갑조차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비켜봐, 골프를 무슨 체스로 배운 줄 아나."
오두석은 무식할 정도로 굵은 팔뚝에 힘을 주어 채를 쥐었다. 그는 물줄기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을 벌려 쏟아지는 물을 삼키며 짐승처럼 웃었다.
오두석이 휘두른 채가 물벽을 가르며 날카로운 파열음을 냈다. 찌그러진 드라이버 헤드가 공을 짓이기듯 때렸고, 그 반동으로 튄 물방울들이 유시영의 뺨을 때렸다. 공은 직선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100미터 지점의 표적을 강타했다. 깡! 하는 금속음이 수막을 뚫고 연습장에 울려 퍼졌다.
옆 타석의 서한결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입스 때문에 어드레스 상태에서 굳어버린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그의 턱끝을 타고 흘렀다. 백강후는 그런 서한결의 귀에 대고 차갑게 속삭였다.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지? 차라리 다 무너져라. 이 빗줄기가 네 떨림을 다 가려줄 테니까, 그냥 휘둘러."
서한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물줄기 때문에 아예 공이 보이지 않자 역설적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이지 않으니 떨 필요도 없다.'
그는 자신의 발바닥에 닿는 젖은 아스팔트의 촉감과 손바닥에 전해지는 클럽의 결함만을 믿고 몸을 회전시켰다.
경련하듯 꺾이던 그의 손목이 임팩트 순간 거짓말처럼 부드럽게 펴졌다. 서한결의 공 역시 물보라를 뚫고 표적 근처에 떨어졌다. 기존 선수들은 경악했다. 자신들이 '환자'나 '낙오자'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이 지옥 같은 환경에서는 오히려 자신들보다 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윤새봄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녀는 이미 수십 번의 샷을 날려 표적을 맞히고 있었다. 그녀에게 골프는 스포츠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캐디백을 메고 산을 타며 비바람을 견디던 시간들이 그녀의 하체를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성공할 때마다 무심하게 다음 공을 끌어왔다.
백강후는 젖은 채로 서 있는 선수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기존 멤버들의 눈에는 독기가 올랐고 신입들의 눈에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그 팽팽한 살기야말로 백강후가 원하던 '팀의 에너지'였다.
"오늘 훈련은 이제 시작이다. 표적을 맞힌 사람은 거리를 10미터씩 늘린다. 못 맞춘 사람들은 맞힐 때까지 물줄기가 두 배까지 점점 강해질 거다."
백강후의 명령에 데이터 팀장과 운영팀장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모니터에는 선수들의 심박수와 근육 피로도가 위험 수치까지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각성'을 의미하는 뇌파 그래프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백강후는 타석에서 물러나 천천히 시계를 확인했다. 밤은 깊었고 물줄기는 더 거세졌지만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 빗물 섞인 연습장에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공치는 소리만이 폭포수 소리를 뚫고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구학수 회장이 말한 '비명'은 이제 석천 골프단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