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석천건설 연습장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 선수들은 소방 호스의 물줄기가 쏟아져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물줄기가 약해지면 "수압이 낮다"며 데이터 팀을 타박할 정도였다. 찌그러진 헤드와 무게중심이 뒤틀린 '결함 있는 클럽'들은 이제 그들의 손가락처럼 익숙해져 있었다.
그사이 스카우트 팀장 이문식이 데려온 신입들도 완벽하게 팀에 녹아들었다. 입스 때문에 떨던 서한결은 이제 그 떨림을 이용해 공에 미세한 회전을 거는 법을 터득했고, 분노 조절이 안 되던 오두석은 그 폭발력을 오직 임팩트 순간에만 쏟아붓는 절제력을 갖게 되었다.
백강후는 연습장 한가운데 서서 선수들의 샷 궤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운영팀장 박석진이 태블릿을 들고 다가와 낮게 보고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구 회장님이 말씀하신 '그 장소' 대관 완료했습니다. 협회 놈들 모르게 움직이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백강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원 멈추고, 자기 백 싸라."
선수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백강후를 보았다. 며칠간의 지옥 훈련으로 인해 그들의 눈빛은 전보다 훨씬 깊고 서늘해져 있었다.
"지금부터 장소를 옮긴다. 너희가 며칠 동안 깎아 만든 그 발톱이 진짜 살점을 찢을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간다."
선수들이 올라탄 버스가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경기도 외곽의 한 이름 없는 '군사 사격장' 인근의 거친 황무지였다. 잔디 하나 없는 돌밭과 가파른 흙벽 그리고 불규칙하게 불어오는 산바람이 가득한 곳.
그곳에는 이미 구 회장의 지시로 설치된 임시 티박스와 수십 개의 '강철 표적'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서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구학수 회장이었다.
"강후야, 애들 상태는 좀 어떠냐? 내 돈 귀한 줄 아는 놈들인지 확인 좀 해보자고."
구 회장의 등장에 선수들이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백강후는 대답 대신 유시영을 앞으로 불러냈다.
"시영아. 저기 150미터 위, 흙벽 사이에 박힌 철판 보이지? 저거 맞혀서 소리 내봐. 바람 계산하지 말고, 네 몸이 느끼는 그 '감'대로 쳐."
유시영은 며칠 전 소방 호스 아래서 느꼈던 그 지독한 수압을 떠올렸다. 지금 부는 이 산바람은 그때에 비하면 산들바람 수준이었다. 그는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찌그러진 7번 아이언을 짧게 쥐었다.
깡—!
바람을 뚫고 날아간 공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철판 정중앙을 때렸다. 고요한 황무지에 날카로운 금속음이 메아리쳤다. 구 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구 회장의 눈짓에 백강후가 수신호를 보냈다. 이제 연습장은 황무지 전체가 되었다. 선수들은 각자 흩어져 자신만의 사냥을 시작했다.
다음으로 나선 것은 오두석이었다. 그는 300미터 밖,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작은 드럼통을 겨냥했다. 찌그러진 드라이버가 허공을 가르자 폭발적인 파열음과 함께 공이 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강한 맞바람이 불었지만 오두석의 공은 바람을 찢어버리듯 전진해 드럼통을 걷어찼다.
콰강!!!
웅장한 타격음이 골짜기를 울렸다.
뒤이어 서한결이 나섰다. 그는 울퉁불퉁한 돌밭 위에 공을 두었다. 잔디도 없는 곳이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손목의 미세한 진동을 이용해 공을 띄웠다. 공은 마치 살아있는 새처럼 휘어지며 바위 뒤에 숨겨진 철판을 정확히 때렸다.
시연이 계속될수록 구 회장의 표정은 무거울 정도로 진지해졌다. 마지막으로 윤새봄의 샷이 황무지의 정막을 깨고 철판을 울리자 구 회장은 천천히 박수를 쳤다.
"강후야, 네 말이 맞았구나. 멀쩡한 채로 예쁜 잔디 위에서 칠 때는 보이지 않던 놈들의 '독기'가 이제야 보인다."
구 회장은 비서실장이 들고 있던 가죽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두툼한 흰색 봉투 6개가 들어 있었다.
"이건 금일봉이다. 너희가 며칠 동안 흘린 땀에 비하면 푼돈이지만 오늘 저녁은 이 돈으로 가장 비싼 고기를 사 먹어라. 코치 눈치 보지 말고."
선수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들 때 구 회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서한결. 네 어머니 수술비와 밀린 병원비는 오늘 오전에 다 처리했다. 오두석, 네가 예전에 갤러리와 싸워서 물어줘야 했던 합의금이랑 소송도 우리 법무팀에서 깔끔하게 정리 끝냈고. 윤새봄, 네가 캐디 하던 골프장에 진 빚도 이제 없다."
선수들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돈 몇 푼을 주는 것보다 그들의 발목을 잡고 밤잠을 설치게 했던 삶의 진흙탕을 회장이 소리소문없이 치워버린 것이다.
"이제 너희 인생에 골프 말고 핑계 댈 건 아무것도 없다. 빚도 가족 문제도 과거의 사고도 다 내가 지웠다. 만약 여기서 실패한다면 그건 오로지 실력이 없어서일 뿐이야. 알겠나?"
구 회장의 목소리는 인자했지만 그 이면에는 도망갈 구멍을 완벽히 차단하는 포식자의 서늘함이 서려 있었다. 선수들은 봉투를 꽉 쥐었다. 이제 이들에게 백강후는 저승사자였고 구 회장은 신(神)이었다. 그리고 석천은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유일한 성벽이 되었다.
"자, 고기 먹으러 가자. 코치님, 오늘은 내가 골든벨 좀 울려도 되겠지?"
구 회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백강후의 어깨를 쳤다. 백강후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으며 흙먼지 묻은 선수들을 버스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