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벙커는 피하지 말고 통과하라.

아스팔트 위의 첫 비명!

by 일야 OneGolf

​​새벽 6시.

강원도의 칼바람이 연습장 정문의 쇠창살을 흔들었다.


​외박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의 안색은 하나같이 파리했다. 술을 마신 것도 잠을 설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따뜻한 집 침대에 누워서도 등 뒤에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듯한 환각에 시달렸다. 연습장 정문에 걸린 '성역(聖域)'이라는 글자가 오늘따라 서슬 퍼런 작두날처럼 보였다.


​"왔나..."


​백강후는 이미 아스팔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어제보다 더 거친 질감의 검은 바닥이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선수들은 말없이 자기 타석 앞에 섰다. 매트가 있던 자리엔 이제 구두 굽도 잘 들어가지 않는 딱딱한 아스팔트뿐이었다.


​"어제 다들 머릿속으로 수천 번은 휘둘렀겠지. 이제 몸으로 증명해라. 7번 아이언 잡아."


​강건한이 가장 먼저 채를 뽑아 들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최신형 머슬백 아이언이 아스팔트 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어드레스를 잡았다. 평소라면 쉽게 했을 동작이지만 바닥이 바뀌자 공포로 다가왔다.


​'조금이라도 깊게 들어가면... 손목이 나간다.'


​깡—!


​강건한의 스윙이 허공을 갈랐다. 공은 맞았지만 뱀처럼 낮게 깔려 구석으로 처박혔다. 아스팔트 바닥에 닿기도 전에 겁을 먹고 몸을 일으킨 탓에 공의 윗부분을 때린 '톱핑'이었다.


​"다음..."


​백강후의 짧은 명령이 떨어졌다. 유시영이 나섰다. 그는 신중하게 공만 걷어내려 애썼다.


​치이익—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공은 제법 멀리 날아갔지만, 유시영은 비명을 지르며 클럽을 놓쳤다. 아스팔트를 스치듯 지나간 충격이 샤프트를 타고 올라와 팔꿈치까지 짜릿한 통증을 전달한 것이다. 7번 아이언의 솔(Sole) 바닥에는 흉측한 긁힘 자국이 남았다.


​"이게... 이게 뭡니까 코치님! 채가 다 망가지잖아요! 저희 손목 나가면 책임지실 거예요?"


​유시영이 바르르 떨리는 손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백강후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유시영이 놓친 아이언을 집어 들었다.


​"채가 망가지는 게 아깝냐, 네 스윙이 망가진 게 아깝냐?"


​백강후는 거칠게 긁힌 아이언 바닥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아스팔트는 거짓말을 안 해. 네가 조금이라도 공 뒤를 치면 네 손목을 꺾어버리고, 네가 공을 무서워해서 몸을 들면 공을 바닥으로 처박지. 여기선 오직 '정타'만이 살아남는다."


​백강후는 그 자리에서 유시영의 채를 휘둘렀다.


​텅—!


​청명한 타구음. 아스팔트 위였지만, 백강후의 스윙은 마치 구름 위를 지나가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공은 수직으로 솟구쳐 150미터 지점에 꽂혔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흠집 하나 남지 않았다.


​"공을 패지 마라. 아스팔트가 깔린 건 너희를 다치게 하려는 게 아니라 너희 몸 안에 숨겨진 '불필요한 힘'을 찾아내 죽여버리려는 거니까."


​선수들은 넋이 나간 채 그 광경을 보았다. 아스팔트 위에서 디봇(Divot) 자국 하나 없이 공만 깨끗하게 걷어 올리는 기술. 그것은 단순한 힘이 아니라 지면과의 완벽한 호흡이었다.


​그때, 백강후가 예상치 못한 지시를 내렸다.


​"데이터 팀. 지금부터 18번 타석 앞 아스팔트에 물 뿌려. 완전히 빙판처럼 만들어."


​"예? 물을요?"


​"그리고 유시영. 너는 거기서 100미터 앞의 저 나무를 넘겨. 9번 아이언으로."


​선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끄러운 아스팔트 위에서 고탄도 샷을 날리라고? 조금만 중심이 흐트러지면 대형 사고였다.


​"못하겠으면 말해라. 핑계 대고 서 있는 놈들 기다려줄 시간 없으니까."


​유시영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고탄도 샷이라니. 발이 조금만 미끄러져도 허리가 나가거나 채가 아스팔트를 때려 손목이 박살 날 게 뻔했다.


​"코치님, 이건 정말 위험합니다. 물기가 있어서 접지력이 전혀 없어요. 이건 골프가 아니라 묘예..."

​유시영의 항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강후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묘기? 아니, 이건 실전이다. 비 오는 날 경사면에서 나무 뒤에 공이 떨어지면 '위험해서 못 하겠다'라고 기권할 건가?"


​백강후는 오히려 데이터 팀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데이터 팀, 18번 타석 앞에 뿌린 물에 기름 섞어. 그리고 시영이 너, 나무 넘기는 거 취소다. 그 나무 사이 '좁은 틈'으로 낮게 깔아서 120미터 지점에 세워. 조금이라도 뜨거나 휘면 처음부터 다시 한다."


​선수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불만을 터뜨리자 오히려 난도가 두 배는 더 높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가 떨어진 것이다. 고탄도보다 더 어려운 것이 미끄러운 바닥에서의 '낮고 강한 펀치 샷'이었다.


​"불평 한마디 할 때마다 과제는 두 배씩 어려워질 거다. 할래, 아니면 더 어려운 거 받아 들래?"

​백강후의 눈빛은 비어있는 독사 같았다. 유시영은 이제 알았다. 이 인간에게 '못 하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오직 '어떻게든 해낸다'는 결과만이 이 지옥을 끝낼 유일한 열쇠였다.

​유시영은 젖고 기름진 아스팔트 위에 섰다. 발바닥에서부터 전해지는 미끈거리는 감촉에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스윙의 크기를 줄이고, 오직 임팩트 순간의 정밀함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기름진 바닥... 힘을 쓰면 무조건 넘어진다. 채의 무게로만, 공의 머리를 짓누르듯...'

​유시영이 숨을 멈췄다. 그리고 9번 아이언을 짧게 쥐고 아스팔트 위로 공포를 던졌다.


​깡—!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렸고 ​기름 섞인 물이 사방으로 튀어 유시영의 바지단을 적셨다. ​공은 지면을 스치듯 날아가 나무 사이 좁은 틈을 화살처럼 관통했다. 유시영의 몸이 휘청거렸지만 필사적으로 하체를 고정하며 바닥을 버텼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오직 하나, 나무 사이 좁은 틈을 뚫고 지나간 하얀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공은 거짓말처럼 120미터 지점에 멈춰 섰다.

​유시영은 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하체를 고정하느라 허벅지 근육이 찢어질 듯 경련했지만 채를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었다. 손끝에 남은 그 묵직하고도 정교한 감각이 마치 마약처럼 전신을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선수생활 내내 수만 번의 공을 쳤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완벽한 통제'.


환경이 지옥 같을수록 그 지옥을 이겨내고 공을 보낸 쾌감은 중독될 만큼 강렬했다.
​유시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백강후를 돌아보았다. 눈에는 여전히 서슬 퍼런 증오가 서려 있었지만 저 밑바닥에는 부정할 수 없는 열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 했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뱉은 유시영의 말에 백강후는 대답 대신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수건을 던져주며 툭 던졌다.


​"기분 좋지? 그게 네가 평생 잊고 살았던 '진짜 골프'다."


​백강후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 나머지 선수들을 훑었다.


​"봤지? 유시영이 성공했으니, 너희는 이제부터 나무 틈이 아니라 저 나무 '가지'를 맞춰서 120미터에 세운다. 못 맞추면 오늘 점심은 없다."

​선수들의 얼굴에 다시 절망이 어렸지만, 유시영을 본 그들의 눈빛은 이전과는 달랐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과정을 목격한 자들의 눈빛.
​연습장에는 다시 아스팔트를 긁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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