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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형아 Oct 26. 2024

채권을 거래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가는데..

‘로꾸꺼, 로꾸거, 거꾸로 생각해야 되어서 그렇습니다'

앞선 글에서 사실 당장에 이해 가능한 부분은 ‘내 전세계약서는 사실 채권’과, ‘그에 상응하는  채권을 집주인이 팔아야만 내가 받을 수 있다’ 정도겠죠. 좋습니다. 채권. 돈 받을 권리. 제가 통장에 비유를 했습니다만, 우리는 이 통장이 만기가 될 때까지 들고만 있어 봤지, 통장 자체를 사고 판 경험이 없으므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첫 설명을 통장으로 시작했으니, 통장으로 비유를 들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가 보죠.


2024년 하반기, 지금 당장 검색 가능한 제1 금융권 금리는 2.xx% 군요. 장기로 할 경우 2.9%까지 올라가네요. 간단하게 3%라고 가정해 봅시다. 즉, 100만 원을 넣으면 1년 뒤 딱 오늘 당신은 103만 원을 받게 되네요. 당신의 통장을 3% 통장이라고 합시다. 우리가 뭘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미국이 금리를 내린다고 하고, 올 9월에 이미 한국도 금리를 한차례 내렸죠. 하여튼 내가 예금을 하면 이자를 점점 적게 받는다는 뜻 같습니다. 내년 2025년 1월을 예상해보죠. 아마도 예금 이자는 2%가 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당신의 연인이 1월에  정기 예금을 듭니다. 당신의 연인은 2026년 1월에 102만 원을 받게 되겠네요. 이것을 2% 통장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이 통장들을 사고팔 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3% 통장,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아니, 3% 통장을 당신은 얼마에 구매하시겠습니까?


진짜 잠깐 멈춰서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1년 뒤면 103만 원이 되는 통장.. 을 얼마에 팔아야 할까요? 우리 집주인 같은 실수는 하지 맙시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요. 통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네요. 1년 뒤 약정된 이자 3만 원을 드립니다.


 ‘100만 원이 들어 있고 나중에 3만 원 더 주니까 103만 원 아니야? 103만 원에 팔면 되겠네’


정말입니까? 당신이 통장을 사야 하는 사람이면 1년 뒤에 3만 원을 받는다는 약속이 적힌 종이를 100만 원이 아닌 103만 원에 사시겠습니까? 멍청하게 1년 손해 보는 짓을 왜 합니까? 그럴 리가 없죠? 그렇다면 100만 원에 사시겠습니까? 아니겠죠. 그냥 100만 원을 내가 은행에 넣으면 되지 굳이 다른 사람에게 살 이유가 없죠? 이제 슬슬 감이 잡히실 겁니다. 그러면… 3% 통장은 얼마에 사면되나요?


그렇습니다. 3만 원을 미리 지급한 금액. 97만 원이죠. 이 채권을 사는 사람에게 1년의 페널티를 미리 지급해야, 사는 사람이 설득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니 돈을 은행에 넣어만 본 우리들은 이 채권거래가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겁니다. 이런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인 집주인이 채권을 팔았으니,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채권을 팔려면 지금보다 싼 값에 팔아야 하는데, 부동산이라는 기초자산이 있다 보니, 자꾸 거꾸로 생각하고 거꾸로 팔려고 하는 겁니다. 물론, 새로 들어올 세입자도 채권에 대해 아는바 없지만, 등기부 등본을 한번 보니 저 금액에 들어가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거거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조금만 더 배워 봅시다. 아까 내 연인은 2% 통장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98만 원에 사야겠네요. 맞죠? 으음..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분명 3%짜리 통장이 더욱 가치가 있는 건데, 가격은 97만 원이라니. 본능이 거꾸로 가는 숫자를 거부합니다. 즉, 금리가 높을수록 채권은 싸집니다. 어? 앞서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죠. 1억짜리 집 전세금은 보통 8000만 원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전세는 대체적으로 ‘싼’ 채권입니다. 그것도 무지하게 싼 채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매매가 1억짜리 집을 8000만 원 전세에 들어가는 행위는 집주인이 당신에게 2000만 원을 주는 대신 그 집에 사는 겁니다. 당신은 일단 2000만 원을 손해 보는 셈입니다. 플러스 2년간의 시간은 덤이고요. 그러니 월세 vs 전세대출 이자를 하는 건 하나만 보고 셋 쯤 잃는 행위 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집에 살게 됨으로써 얻는 출퇴근 시간 이득이라던가 우리 아이 학교라던가 뭐 부가적인 게 있겠지만 여기서는 논 외로 합시다. 

어느 쪽이 위고 어느 쪽이 아래죠?

이상합니다. 분명 내가 저금할 때는 금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은 건데, 왜 채권은 금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가치가 낮아지지? 채권이랑 통장이랑 같은 거면 똑같은 가치를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네. 아닙니다. 왜냐하면 채권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위치(포지션)가 정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돈이 필요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돈이 남는 사람입니다. 포지션에 따라서 가치는 정 반대로 갈 수밖에 없죠.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무슨 싸움을 하죠? 파는 사람은 비싸게 팔려고 하고, 사는 사람은 싸게 사려고 합니다. 이상하죠? 고등어는 그대로 누워서 꼼짝을 안 하는데요. 포지션에 따라 가치 자체가 반대로 가는 셈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20%짜리 채권은 더 무섭습니다. 집주인은 뭔 깡다구가 있어서 나에게 20%의 수익을 보장한단 말입니까?




그러니, 따지고 보면 1억시세 8000만원 짜리 전세계약은 2000만 원 손해를 보면서 집주인에게 투자를 한 셈입니다. 아니 무슨 투자요? 그런 적이 없다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 어떤 집주인도 당신의 전세금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게운영에 쓸 수도 있고, 자식 학비로 쓰기도 하고, 또 다른 부동산을 사는 시드 자금으로도 씁니다. 어떻게 보면 20% 수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그 집에서 살게 하되, 자신은 받은 돈으로 경제적인 활동을 지속합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더 웃깁니다. 돈이 필요하면 그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게 훨씬 나을 텐데, 그러지 않고 20%짜리 채권을 팝니다. 왜 그럴까요? 간단하죠. 그 집으로 보통 대출을 받을 수 없어서 그러는 겁니다.


 거꾸로 말하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20%나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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