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가격 메커니즘과 소비자의 선택
2022년 대게 대란이 아주 큰 이슈였습니다. 마트에서 35000원에 판다느니, 경매에서는 2만 원대에 낙찰이 되었다느니 하며 비싸서 먹기 쉽지 않은 대게를 드디어 먹을 수 있나 여기저기서 기웃기웃했던 게 기억이 나시나요?. 뉴스에서는 연일 보도를 때렸는데, 러시아 때문이다, 아니다 상하이가 봉쇄해서 그렇다, 롱포지션 잘못 잡은 유통업자들의 눈물의 바겐세일이다 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댔지만 하나같이 상관이 없었죠. 당연히 이 이유들은 타당하고 가격의 하락을 가져온 원인이기는 한데.. 가만, 우리는 뭔가 놓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 대게 1킬로에 얼마가 맞는 금액이야?
아마도 뉴스를 접하고 수산시장과 마트를 찾았던 여러분들은 실망했던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산물은 정말 정말 값을 매기기 어려운 품목이라서 그렇죠. 금태(눈볼대) 같은 경우 신선도의 차이에 따라 가격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선어 횟감 눈볼대는 1마리 3만 원을 훌쩍 넘지만, 구이용 해동 눈볼대는 3마리에 1만 원 이하죠. 하물며 갑각류는 오죽할까. 갑각류는 특히 값을 매기기 어려운데, 속을 알기 힘들뿐더러,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스로 다리를 끊고, 수조에 오랫동안 보관해 두면 스스로 자신의 근육을 에너지로 소비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놈이라고 해서 수율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죽으면 그 즉시 부패를 시작하여 암모니아를 생성하기 때문에 선어로 유통하기에도 그다지 좋은 생물도 아니죠.
아이러니하게도 맛이 기가 막히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제가 사실은 수산물에 어느 정도 정통이 있는지라, 당시에 가격 동향을 꽤나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이게 웃긴 양상을 보였는데, 산지라고 일컬어지는 포항, 구룡포는 당시 대란과 크게 상관없이 킬로당 6~8만 원을 유지했습니다. 반면 노량진이나 기장시장의 큰 규모의 점포는 하루단위로 가격 변동이 있었는데, 수율 90% 기준으로 4.5만 원 위아래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롯데 마트는 카드이벤트+롯데 포인트 사용을 합치면 최대 킬로당 35900원까지 구매할 수 있었고요.(물량은 극히 소량) 솔직히 부산 기장시장은 포항 죽도시장이나 구룡포 대게 직판장에 비하면 규모가 형편없이 작습니다. 애초에 시장 자체가 작은 데다, 대게 전문점이 6~8군데 정도 모여있고 그나마도 밤 9시 되면 불 다 끄죠. 그런데 어떻게 전국에서 가장 싼 값으로 대게를 제공했을까요? 왜 전국의 일부 시장만 싸게 팔까? 정답은 당연히 이번에 갑자기 쏟아진 대량의 물량을 적기에 받을 수 있는 능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보관할 수 있고, 그만큼 팔 수 있고. 그러면 다른 지역은? 왜 포항은 가격이 싸지지 않았나? 애초에 포항 주변은 국산 조업 물량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 물량이 소진되지 않으면 창고에 대게를 넣을 수 없으니까.
즉, 대게 이벤트는 내가 사는 곳 주변의 대게 물량 소비율과 그 물량을 제공하는 업자의 능력에 의해 굉장히 크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도권 같은 경우는 노량진에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는 순간 +5000원, +10000원이 될 것이고요. 마트 같은 경우는 뛰어난 유통경로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줄 세우려는 작은 이벤트에 불과하고 그 마저도 아주 소량이었죠.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대게를 먹으려고 수산시장을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 대게 3만 원대 이벤트는 그걸로 끝납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은 당연히 오르는 법..
믿기지 않겠지만 중국인들이 킹크랩에 맛을 알기 전에 기장시장에서 킹크랩은 킬로당 2만 원 정도였습니다. 한 5만 원 정도면 3명이서 킹크랩을 몸에 바르고도 남을 정도였죠. 하지만 이제 킹크랩은 킬로당 8만 원 밑으로는 구경하기도 힘들죠. 그러면, 킹크랩의 적정가는 얼마인가? 여전히 킬로당 2만 원이 합리적인가? 중국인들의 사재기로 인해 가격에 거품이 생긴 건가? 키로 8만 원 주고 먹는 사람들은 죄다 호구인가? 그렇지 않죠? 킹크랩과 대게의 생산율은 여전히 정해져 있고, 앞으로는 줄어들 가능성이 더 높으며 미디어의 효과로 찾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게 뻔하죠. 킹크랩의 가격은 중간 유통업자들의 장난질이 아닙니다. 시장이 가격을 그렇게 만든 것뿐입니다. 구매하는 사람이 그렇게 사겠다라고 하기 때문에 그 가격이 정해진 거죠. 따라서 시장의 가격은 늘 옳습니다
이걸 주식에 대입해 봅시다. 주식 ‘시장’ ‘market’이라고 부르는 데는 여기에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삼전이 10만 원이 적정 간데 왜 여기에 있느냐라고 부르짖어 봐야 소용이 없죠. 10만 원이 적정 가면 지금 땡빚을 내서 사야 하는 게 맞고 그게 아니라면 지금 가격이 맞는 겁니다. 일시적인 소강상태라고 생각이 된다면 여전히 갖고 있으면 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거들떠도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고려아연과 영풍을 향해 달려가면서 킹크랩이 왜 이리 비싸냐. 시장이 가치를 잘못 산정하는 것 아니냐. 저걸 사고(팔고) 있는 놈은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왜 시장을 교란시키냐 하면서 투덜댑니다.
내가 좋은 대게를 싸게 고를 능력이 없으면 시장에서 상인이 파는 가격이 옳은 법입니다. 내가 재무제표를 읽을 줄 모르고 업계 동향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지금 이 주식 가격은 왜곡되어 있다’라는 말은 어불성설이죠. 상품(주식)에 정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고자 하는 가격과 팔고자 하는 가격이 서로 싸우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