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당신
앞서 우리는 은행에 저금을 하는 행위가 은행에 돈을 파는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출은 뭘까요? 저금과 정대의 행위인 돈을 사는 행위입니다. 그 돈값으로 ‘이자’를 내는 거고 그 권리를 증명하는 것이 통장(채권)이죠. 뭘 보고 당신한테 내가(은행이) 채권을 사야 하느냐? 하면 쨔잔. 제가 아파트가 있습니다. 빌라가 있습니다. 여기 그 증명서입니다 하면 그에 맞게 거래가 이루어지는 거죠. 집을 사고팔 때 큰돈과 신용이 필요하니까 그 사이에 신용을 중개해 주고 보증해 주는 은행이 끼어 사회에 흐르는 신뢰가 정상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한다는 건데.. 그럼 큰돈과 신용이 왔다 갔다 하는데, 집은 사고파는 게 아닌 전세는 뭘까요?
이런 기형적인 거래가 이루어진 것은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이 너무 후진적이라 생긴 문제가 아니라, 60~80년대까지의 금융시장이 해도 해도 너무 할 정도로 후진적이라 생긴 제도라고 봐야 옳습니다. 미칠도록 높은 대출이자, 전쟁 이후 벌어진 끊임없는 부동산의 비정상적인 이동, 따라서 서류로서 증명할 수 없으니, 부동산으로 은행 대출을 받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2년 거주권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권리를 개인적으로 사고팔게 되었죠. 그게 전세. 즉, 전세는 그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요구해서 생긴 제도라기보다는 돈이 필요한 집주인이 필요해서 생긴 제도가 더 맞습니다.
그러면 우리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전세의 값은 얼마가 적절할까요?
전세라는 행위가 집주인의 대출 욕구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본다면 ‘은행에 줘야 할 이자를 주지 않아도 됨’ 이 맞겠죠. 즉, 80년대에 1억짜리 집이었다면 전세는 대략 8000만 원이 맞는 걸로 보입니다. 왜냐고요? 그 돈을 은행에 넣으면 이자가 20%였던 세상이니까 그렇죠. 그러면 현재는 얼마가 맞나? 1억짜리 집이면 9500만 원이 맞겠죠. 이게 정상적인 채권 가격입니다 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전세 시세를 생각해 보면 매매가의 80%죠. 어? 은행 이자가 5% 내외인데, 20% 짜리 채권이 있다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이걸 안 팔 이유가 없습니다. (집주인이 돈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자가 높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정 반대죠. 5%와 20% 차이, 15%는 세입자가 지는 리스크인 셈입니다. 이자를 높게 쳐준다는 말은 ‘문제가 있다’와 동의어입니다. 채권 시장에서는 이것을 ‘정크본드’ ‘쓰레기 채권’이라고 부르죠. 5%와 20% 차이, 15%는 세입자가 지는 리스크인 셈입니다.
그냥 맥락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사금융인데, 그러면 은행은 중간에 껴서 뭐 하는 거죠?
안타깝게도 집주인도, 세입자도 은행 돈을 빌려서 집을 사고 전세에 들어갑니다. ‘집주인’이라는 신용을 은행은 강제로 보증해야만 하죠. 그러니까 은행이 1등으로 돈을 가져가는 겁니다. 은행입장에서는 거주권이라는 불분명한 담보를 상대로 큰돈을 빌려줘야 하는데(채권을 사야) 그 와중에 정부가 이자도 제대로 못 받게 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어쩌란 말입니까? 등기부에 1등으로라도 올려줘야지. 미국에서 은행들이 리스크 헷지 한답시고 그 채권을 마음대로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팔았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죠? 그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아닌가요? 국가 입장에서는 은행이 매입한 채권을 마음대로 처분하세요-라고 절대 말 못합니다. 즉, 불안정한 채권의 유동성을 정부정책으로 강제로 돌리는 셈입니다.
여기서 사기꾼들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은 눈치를 채고야 말았습니다. 은행은 ‘집주인’이라는 신용을 강제로 보장해줘야 한다는 걸. 그러니 집주인만 있으면 그게 뭐든 ‘전세채권’을 마음껏 팔아제낄 수 있는 겁니다. 집주인이 누군지 뭔 상관입니까? 즉, 은행과 정부, 금융사이에 교묘하게 벌어져있던, 혼란 때문에 메꿀 수 없었던 그 틈을 파고들어 얼큰하게 해 먹은 것, 팔아먹은 정크본드를 그냥 파산시켜 버립니다. 그러니 애초의 집값은 중요한 사항이 아닙니다. 전세사기의 패턴 중 가장 유명한 게 '사실은 2억짜리 집인데 2.5억으로 전세를 내놓고..' 어쩌고 하는 것 아닙니까. 실제로 그 집이 2억이 맞나요? 거래가 없는 신규 빌라에 그런 게 어딨습니까? 그냥 분양사가 그렇다 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 거죠. 주식으로 비유하자면 비상장 주식을 장외 시간에 산 것과 비슷합니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채권을 산 사람만 부도가 납니다. 그게 보증보험이냐, 은행이냐, 생돈을 넣은 세입자냐 그 차이지..
결국은,
전세사기가 엄청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분노하는데서 멈추지 말고 '전세'라는 제도는 사실 거주권을 사고파는 행위가 아닌, 개인 간의 금융거래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개인 금융거래.. 듣기만 해도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그러다 보니 정부가 개입하는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고, 법정에서 나오는 판결문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겁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리스크와 이득을 감안하고 진행한 개인적인 '금융 거래'라고 보기 때문에 항상 세입자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 불리한 판결이 나는 거죠. 그러면 나는 어쩌나요. 가족도 없고 결혼도 안 했는데, 전세도 위험해서 못 들어가면 나는 어쩌나요. 전 세계 사람들이 똑같이 하듯이 월세를 살던지, 집을 사던지, 둘 중 하나가 아닐까요. 두 세편에 걸쳐서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