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사면 그게 정가지 뭐가 정가야..?'
우리의 유동성을 이동시키는 수많은 수단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소비죠. 하여튼 우리는 안사면 죽는 병에라도 걸린 건지, 마구마구 사 재낍니다. 그중에는 반드시 사야만 하는 게 있을 거고요, 안 사도 되는 물건도 있겠죠. 그런데 가만 보면 이 말조차 아주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안 먹으면 죽죠. 그러니 먹는 건 반드시 사야 해요. 하지만 먹을 수만 있다면 다 상관없나요? 현미쌀 5킬로, 냉동 닭가슴살 20kg, 양배추 5통, 멸균우유 20개 들이 박스 2개, 그리고 종합비타민 센트룸 1 통이면 탄단지 비율이 잘 맞추어졌으니, 한 달 식비는 걱정 안 해도 되나요? 그렇지 않죠?
제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진심으로 전달해도, 비단 남녀관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떤 마음은 보답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어떤 마음은 들은 체 만 체 상처로 남기도 하죠. 먹으면 똥 되는 음식은 왜 먹나 싶지만, 오늘 받은 직장 내 스트레스는 수육백반에 소주 한잔, 혹은 자취방에서 시켜 먹는 엽떡이 아니면 저를 이해해 주지 않는단 말이죠. 그러니 엽떡과 국밥을 통제당해야 한다면 돈이고 유동성이고 뭐고 다 집어치워야죠. 다만, 우리 일상 속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연습은 해보자 이겁니다. 특히, 한번 쓰면 돌아오지 않는 돈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정기예금은 1년 뒤면 반드시 돌아오잖아요? 그 친구는 자게 내버려 두자고요.
여기에 좋은 예시가 있습니다. 바로 스팸이죠. 유통기한이 존재하지만 케이스가 변질되지 않는 한 10년이 지나도 먹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맛도 우리가 아는 그 맛 그대로죠. 어떻게 보면 돈과 비슷합니다. 다만, 용도가 먹는다는 것뿐이죠. 인류 멸망이 오면 이걸 화폐로 사용해도 될 지경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변의 가치를 지니는 듯한데, 그래서, 이거 200g 한 캔에 얼마인가요? 당신은 정가를 이야기할 수 있나요? 편의점 다르고, 마트 다르고, 쿠팡에서 또 다르고, 위의 사진은 심지어 CJ공식몰에서 캡처한 사진입니다. ‘많이 사면 싸니까 그렇지..’ 음.. 왜요? 왜 많이 사면 싸게 해 주는 거죠? 그럴 이유 없지 않나요? 많이 사서 싸게 해 준다고 해도 할인 전 가격은 뭘 뜻하는 거죠?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상당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도 답 할 수 없고요. 결국 총 가격 나누기 캔 개수를 한 가격을 따지더라도 시공간은 물론, 같은 곳에 존재하더라도 어떤 이유에 따라서 각기 가격이 다르다는 것만 깨달을 뿐입니다.
저는 이 글을 위해 검색을 하다가 기가 막힌 문구도 하나 찾아냈습니다.
같은 스팸에서 나온 안내문입니다. 원산지와… 원재료가… 다르다고? 그러면, 내가 산건 스팸입니까, 아닙니까? 원산지랑 원재료가 다른데 어떻게 동일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지난달에 산 스팸과 지금 구매한 스팸의 맛은 같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파는 사람이 거짓말은 하고 싶은데 법 때문에 못하고 있다는 뜻일까요? 제가 너무 막 나가는 걸까요? 자세히 찾아보면 볼수록 어질어질 해집니다. 스팸 한 캔 사는데 이렇게까지 머리를 써야 되나 싶습니다. 그냥 네이버에서 최저가로 배송시키면 안 되나 싶습니다.
왜 이렇게 나는 스스로 재앙을 불러왔을까요. 이것 또한 연습입니다. 나중에 주식과 채권 같은 한눈에 딱 들어오지 않는 자산을 평가할 때 이런 비판적인 시각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결국은 가격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그것은 시간 공간에 따라 달라지며 그 변동폭도 큽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상품 역시 어제와 오늘의 그것이 다르기 때문이며, 시간과 공간이 같은 곳에 있더라도 상품 그 자체의 가치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후에 자산에 투자할 때 ‘언제 사면돼?’ 라던지, ‘야 이거 오르는 거 맞냐?’ 같은 멍청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