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구형아 Oct 25. 2024

전세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알아보는 채권거래

‘네..?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제 돈을 준다고요?’

진짜.. 억장이 무너져도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을 겁니다. 다음 이사 갈 집이랑 계약은 했고, 이사 날짜 잡으려는 와중에 이딴 카톡을 받으면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네, 저희가 결혼할 당시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쩐지 4년 살면서 한 번도 전화가 안 오더라니까요. 이게 개인 사금융 거래라는 인식이 없으면 더 열받습니다. 나는 2년 거주권을 담보로 돈을 맡긴 것이니, 맡긴 돈을 돌려주면 나는 방 빼면 되는데, 돈도 못 받고 방도 빼야 될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전세권 설정, HUG 보증보험, 확정일자 등등 방지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고, 이런 경우에 처했을 때 해결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일 테지만, 하나하나 설명하기는 너무나 양이 방대합니다. 기회가 되면 하나씩 찾아보죠.


저랑 나이차이도 몇 안 나던 집주인아줌마도 착각하기는 매 한 가지였습니다. 여전히 그 집이 자신의 것인 양 으스댔던 것이죠. 와이프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에 좋은 직장에 일하고 있지 않았다면 해결하는데 몇 배의 시간이 더 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집주인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곤란한 처지에 놓여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줄 돈은 물론이고, 세금이 체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가 가장 선순위 채권자였지만, 그보다 위에 놓은 세금이 먼저 지급되어야 했습니다. 집주인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자신만 모를 뿐이죠


 ‘아니.. 집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누가 들어오면 그 돈으로..’



같은 소리를 내뱉기 일쑤입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담보로 대출받는 건 아예 어림도 없습니다. 일단 세금이 체납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 나라 법률상 세입자의 등기권은 생각보다 훨씬 막강합니다. 비록 후순위 일 지라도 금액과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항상 편의를 봐줍니다. 이미 이 상황에서 집주인아줌마는 자신의 집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습니다. 파는 것은 아까우니 대출을 받는다? 은행에서는 코웃음도 치지 않을 겁니다.


누가 들어오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만, 거의 99.99%의 집주인들이 여기서 큰 실수를 저지릅니다. 8000만 원짜리 전세를 8500에 올리는 거죠. ‘복비도 내야 되고.. 늦어지면 이사비도 줘야 되고..’ 네. 당연히 당신이 약속을 어겼으니,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걸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고 하죠. 집은 내 것이고 이 돈은 돌려만 주면 되니까 난 그 사이에서 손해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닙니다. 큰일 날 소리고, 절대로 그렇게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제 당신은 내용증명을 받게 될 거고, 내용 증명에는 미지급된 전세금에 대한 ‘이자’까지 지급하랍니다. 건방진 신혼부부년놈들. 내가 오갈 데 없는 것들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이딴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쳐? 가만히 있지 않겠다.


이 집주인은 자신의 채권이 파산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네. 집주인은 이미 파산했습니다. 약속된 일자에 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신혼부부가 방을 비우던 비우지 않던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8000만 원을 빚진 사람입니다. 망해버린 정크본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유동성을 받는 행위는 지극히 당연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채권이 파산했다는 사실을 모르다 보니, 8000만 원 전세에도 안 들어 올 물건을 8500만 원에 올린다는 거죠. 당신이 전세를 구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등기부 등본에 8000만 원 선순위 채권 + 1600만 원의 남구청 미납 세금이 있다는 걸 보면 얼마에 들어가야 할까요? 요즘 같은 세상이면 부동산에서 아예 안 받아 줄 수도 있습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린데, 집주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행동을 합니다. 일단 이 집을 같은 8000만 원 채권으로 판매하려고 해도 1600만 원의 세금을 해결해 놓고 올려야 합니다. ‘세금은 내 알아서 할 테니까 아 그냥 세입자나 구해달라고’ 같은 소리는 부동산 업자에게는 통할 지 몰라도, 냉혹한 시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세금을 해결했다 손 치더라도 빠르게 채권을 팔려면 7500만 원에는 올려야 이야기가 됩니다. 500만 원 손해라고? 네. 맞습니다. 당신이 약속을 어겼으니 그 손해는 당신이 보는 겁니다. 그 손해를 안 보려고 하면 할수록 시간이 흐를 거고 그 시간에 대한 비용은 점점 늘어만 갈 겁니다.


세금을 못 낸 순간, 집주인인은 유동성 경색에 몰렸습니다. 다만 세금 몇 푼을 못 낸 게 아니라 흐름 자체가 막힌 겁니다. 잠시동안 흐름이 막히는 경우는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그게 서류화 되면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채권을 판 집주인이 손해를 보는 겁니다. 8000-1600-비용까지 해서 전세를 5000만 원에 올리는 거죠. 채권이 굉장히 할인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는 팔릴 가능성이 꽤나 높고, 법무사와 부동산 업자도 세입자를 설득할 수 있는 좋은 요인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집주인은 몇천만 원 손해를 보았지만, 집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의 서류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받은 돈으로 세금도 갚는다면 2년 뒤에는 자신의 부동산 가치를 원상복귀 시킬 수도 있고, 나중에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도 5000만 원 밖에 안되니 이는 결국 유동성 경색을 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손절을 해야 합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하지만 여러분도 알고, 저도 그랬고, 결론은 경매로 끝납니다. 나는 돈을 갚을 수 없으니, 그 등기권으로 알아서 하시오. 가 됩니다. 1억의 집에 8000만 원의 전세권, 1600만 원의 세금이 있으니, 보통 이런 경우 5000~6000만 원 정도에 낙찰이 됩니다. 네? 낙찰이라고요? 저는 8000만 원 돌려받아야 되는데, 4000만 원에 이사비 받고 나가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집주인이라는 사람이 가진 부동산을 처분하고 그 남는 것을 나눠가지는 조건으로 경매를 진행하는 거죠. 집주인 의사와 상관없이 채권자들끼리 빚잔치를 하는 걸로 이 사금융 채권거래를 마무리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제가 가진 돈의 절반을 잃었고, 집주인은 집을 잃습니다. 누구도 행복하지는 않죠. 하지만 세입자가 손해 본 게 더 큽니다. 유동성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시간을 잃었고, 그리고 조금 더 잃어야 되거든요.




여기까지 보면 너무너무 무섭지 않나요? 제가 생각하는 전세제도는 애초에 설계부터 위험한 금융 상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금융상품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중간에 발생하는 리스크 자체를 인식을 못하는 거죠. 특히, 부동산이라는 현물 자산을 가진 파는 사람(집주인)은 더욱더-. 가만 보면 세입자들도 웃깁니다. 저 위험한 전세 채권을 심지어 제1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서 삽니다. 그러면 이 채권이 파산하면 내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는 두 배가 되는데 말이죠. 이런 위험한 사금융이 왜 전국적으로 계속해서 일어나고 또 법적으로 사는 사람(세입자)을 보호까지 해줍니까? 그것은 부동산 물량공급이라는 공적인 면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월세가 자리하고 있어야 할 위치였죠. 아마도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몇 년 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전세 제도를 주의해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합니다.

이전 07화 전세와 채권, 대출과 은행, 집주인과 세입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