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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족쇄

by 공부남주

- 맡기실 약속은요?

- 벗어나고 싶어요.

- 떤...

- 지금의 삶에서... 제 아이만큼은 다른 삶을 살도록 해주겠다 약속을...

- 알겠습니다. 희진 씨, 고객님과 구체적인 용을 확인해 주세요.

기필준은 꾸벅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런데...

여자는 일어서는 기필준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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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듯 흐린 오후 좁고 낡은 골목길에 검은 차 한 대가 천천히 멈춰 섰다.

차 앞문이 열리더니 말쑥한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내렸다. 뒷문을 열자 담배를 꼬나문 남자가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은 채 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차에 기대어 골목길을 둘러보며 말했다.

- 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질 게 하나도 없는데 뭘 자꾸 애쓰는 거야. 열받게


남자는 선글라스 낀 남자에게 상을 쓰며 말했다.


- 일 좀 만들지 마라.

- 네. 송합니다.


낡은 철문 앞에 선 그들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벌컥 열었다.


- 계십니까?


좁은 방 안에서 동화책을 읽던 어린 소녀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방 한쪽에서는 서른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낡은 바느질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왜... ...


- 또라니. 섭섭하게. 자주 보면 좋은 거지. 이자를 많이 갚았다고 하길래 인사하러 왔어요.


신발을 신은 채 방 안으로 들어선 남자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여자는 손을 떨며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 이... 자라니?... 원금까지 다 갚은 건데.


그러나 남자는 전혀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주방 위의 숟가락을 들어 올려 천천히 살펴보더니 툭—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 계약서를 꼼꼼히 안 읽어보니까...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소녀를 향해 앉았다.


- 살이지? 학교는 잘 가고 있고?


소녀는 겁에 질린 채 여자의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여자는 황급히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 한테 말 걸지 마.


남자는 입을 삐죽 내밀며 안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탁—


여자 앞에 종이 서류가 던져졌다.


- 계약서 폐기했다고 해서. 수고스럽게 다시 만들었아.


서류에는 굵은 글씨로 "연체 이자 조항"이 적혀 있었다.


- 원금 갚으려고 괜히 무리하지 말고 꼬박꼬박 이자만 잘 내면 돼. 게 뭐가 어려워.


남자 손을 털며 일어나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갔다.


소녀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깨문 채 종이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손에 움켜쥐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 또... 또 시작이야...


소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홱 몸을 돌려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 ...건 사기야!


골목길 한복판에서 그녀는 손에 쥔 계약서를 힘껏 내던졌다.

차 뒷문을 열고 있던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천천히 걸어오 담배를 나 꺼내 입에 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님.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여자는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 ...희들한테 더 이상 한 푼도 못 줘!


남자는 피식 웃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며 여자 앞에 우뚝 섰다.

-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 ...


그는 갑자기 여자의 팔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 배은망덕.이라고 들어봤어? 그동안 우리 돈으로 잘 살다가 제 빠이빠라고?


여자가 팔을 빼내려 몸을 버둥거렸지만 남자의 손아귀 힘이 더 강해졌다. 남자는 담배를 쥔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 날 생각이 나게...


여자 악하고 소리지르자 남자는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 소리는 왜 질러. 누가 보면 때리는 줄 오해하잖아.

꼬박꼬박 돈나 붙이라고. 알아 들었어?


멀어져 가는 차 뒷모습을 보며 여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이도영입니다.

- 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용기를 내봤는데 도저히 여기서 벗어날 수가...

- 포기하지 말고 전당포에 맡긴 약속만 생각하세요. 고객님 안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고객과의 전화를 끊은 이도영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사장님.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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