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건이죠?
이도영이 김희진에게 물었다.
- 고무신이요.
- 고... 무신요?
- 군대 전역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약속했는데 헤어지게 되었나 봐요.
- 아... 뭐... 군대에선 자주 있는 일이죠.
- 그런가요. 그런데...
김희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으로 입 주위를 만지며 얘기했다.
- 오늘 그 여자 고객님이 이별하겠다고 하면서 계약해지를 하러 왔는데 기분이 좀 이상해서요. 직감이랄까? 설명하긴 어려운데... 그래서 고객 안전차원에서 도영씨가 좀 봐줬으면 해서요.
- 네. 알겠습니다.
- 도영씨, 고마워요.
- 고맙긴요. 제가 할 일인데.
이도영은 점퍼를 챙겨 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거리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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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후라 커피숍 안은 한적했다. 창가 쪽 테이블. 남자는 짧게 깎은 머리를 손으로 헝클었다. 녹색 군복 바지가 그의 신분을 강조했다. 마주 앉은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앞에 놓인 컵만 주시하고 있었다.
남자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 갑자기 왜? 지금...
여자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나도 많이 기다린 거야...
쾅!
남자의 손이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주위의 몇몇 손님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남자는 주변을 살피며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 그러니까... 왜... 지금이냐고... 우리 약속했잖아.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여자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며 얘기했다.
- 솔직하게 말해 줘... 혹시... 다른 남자...
컵을 만지고 있던 여자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 멋대로 생각해.
잠시 뒤 남자는 표정을 바꿔 다정하게 웃으며 여자를 달랬다.
- 얘기 좀 해줘 봐. 답답하잖아.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그런 거 아니야.
- 그런 게 아니면 뭔데? 내가 군대 있는 거 말고 뭐가 문젠데?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다시 커졌다.
여자는 남자의 눈을 마주 보지 않은 채 얘기했다.
- 나도... 많이 고민한 거라는 것만 알아줘.
남자는 억지로 웃으며 머리를 헝클었다.
- 아. 진짜 미치겠네.
그는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애원하듯 말했다.
-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말해 봐. 잘못한 거 있으면 고칠게.
여자는 조심스레 눈을 들었지만 금세 시선을 피했다.
- 그냥... 예전처럼 지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남자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 그래?
그는 이를 악물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서로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여자가 이내 말을 꺼냈다.
- 먼저... 가주겠어?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쉰 뒤 모자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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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도영씨.
- 희진씨. 방금 고객분과 남자분이 헤어지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아무 일 없었습니다.
이도영은 구석에 서서 창가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김희진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 그래요? 다행이네요.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다음에도 미심쩍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 아! 잠시만요.
이도영은 재빨리 전화를 끊고 테이블 위로 쓰러진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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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진짜 뛰어내릴 거야. 아무도 오지 마. ㅇㅇ이 데려와.
- 쇼하지 마.
김기강이 어느새 건물옥상 위 남자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 이씨. 진짜 뛴다.
- 뛰지도 못할 거면서.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 질렀다.
- 한다면 한다고!
- 할 거면 빨리 해. 나도 일 마치고 돌아가봐야 하니까.
남자는 김기강의 건조한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 너... 너 뭔데?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야.
- 나도 그냥 시킨 일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빨리 끝내자.
- 이씨.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고 꺼져.
- 나도 상관 안 하고 싶은데.
남자는 김기강의 거침없는 태도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김기강은 아무 표정 없이 다시 걸음을 뗐다.
- 오... 오지 말라니까. 뛴다.
김기강은 아무 말하지 않고 남자에게 계속 다가갔다.
- 지... 진짜... 뛰... 뛴다...
건물 밑에 모인 사람들은 오오 하면서 웅성거렸다.
엉거주춤 당황한 남자와 달리 김기강은 아무런 동요 없이 다가가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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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밑으로 내려오던 김기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네. 남자는 확보했습니다. 네. 바로 같이 가겠습니다.
- 어... 어딜 간다는 거야...
-...
- 어디 가는 거냐고!
- 병원
남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병원 안으로 뛰어들어갔고 병원에서 나오던 이도영은 스쳐 지나가는 남자를 보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도영은 로터리에 서 있는 김기강에게 다가와 담배를 건넸다.
- 수고했어. 소동이 좀 있었다며?
- 네.
- 안 뛰어내릴 줄 어떻게 안 거야?
김기강은 이도영의 질문에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 딱히요.
이도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김기강에게 반문했다.
- 딱히... 라니? 확실한 게...아니었다는 의미야? 그러다 진짜로 뛰었으면 어쩌려고?
- 글쎄요. 상관없지 않나요. 이제 저희 고객도 아닌데.
이도영은 김기강의 무표정한 얼굴을 응시하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