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작의 힘
순수 한국말에는 예쁜 단어들이 많다. 그 중에서 좋아하는 단어가 '마중물'이다.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안심이 된다. 본래 마중물이란 '펌프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붓는 물'이란 뜻이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해 미리 보태는 행동’이라는 의미로 종종 쓰인다.
펌프에서 물을 길어 올리려면, 먼저 한 바가지 물을 부어야 한다. 그것이 있어야만, 손잡이를 돌릴 때 풍부한 물줄기가 솟구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아무리 큰 목표를 세우고 굳은 결심을 해도,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오랜 습관과 익숙함은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중물이 필요하다.
마중물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작고 사소해야 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다면, 오늘 단어 하나를 외우는 것으로 시작하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결심했다면, 하루 10분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마중물이 된다.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짧은 메시지 하나가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거대한 변화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시작에서 싹튼다.
나에게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이 좋은 마중물이다. 거창한 목표나 완벽한 문장을 써야 한다는 부담 대신, 오늘 느낀 생각을 정리해 한 줄이라도 적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단순한 행동이 내 안의 글 쓰는 가능성을 깨우는 시작이 되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멈춰 있던 생각을 흐르게 하고, 내 안의 목소리를 천천히 세상 밖으로 꺼내는 용기를 준다.
요즘 또 다른 나의 마중물은 요가다. 최근 아침 5시 45분 수업을 다니기 시작했다. 알람을 5시 15분에 맞춰놓고, 식구들을 깨우지 않으려 조용히 거실로 나와 간단히 준비를 한 뒤 바로 집을 나선다. 평생 운동과는 거리가 멀던 내가 40이 넘는 해, 스스로에게 어떤 선물을 줄까 고민하다 요가 수업을 선택했다. 시작하기 전까지는 오래 망설였다. 왔다 갔다 운전하고, 한 시간 온전히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 거 아닐까. 그러다 '한 달만 해보자'는 결심으로 발을 내디뎠다. 물론, 그마저도 바로 코로나가 터지면서 스튜디오가 문을 닫아 본격적인 시작은 1년 반 뒤였다. 일주일에 세 번만 가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요가는 어느새 내 아침을 열어주는 활력소가 되었다. 아직 살이 빠졌다거나 근육이 눈에 띄게 생긴 것은 아니다. 40년 넘게 쓰지 않던 근육이 1~2년 만에 달라지길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신 나는 꾸준함에 의미를 둔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한 중년을 살기 위한 여정에 요가는 확실한 마중물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큰 목표 앞에서 겁을 먹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첫걸음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펌프에 붓는 작은 물 한 바가지, 마중물이다. 오늘 나는 나에게 어떤 마중물을 붓고 있는가?
오늘도 나는 나에게 마중물 한 바가지를 붓는다. 나의 멋진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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