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타인 Head 4 26화

감정의 교집합

여러 감정이 공존함을 받아들이는 성숙함

by 타인head


수학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삶 속에서 겹쳐 있는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 우리 대부분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 감정을 빨리 정리하려 한다. 사실 불편한 감정을 쉽고 빠르게 정리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 감정을 마주하지 않는 것이다.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시된 감정은 마치 축축한 나무에 피어나는 독버섯과 같다. 그냥 두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자라나고 독성이 강해진다.


그다음으로, 불편한 감정을 빠르게 정리하는 방법은 나라는 사람과 감정에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나는 강한 사람이니까 쉽게 울면 안 돼.’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불평하면 안 돼.’


이렇게 스스로를 규정하며 감정들을 서랍 속에 하나씩 밀어 넣는다. 그러면 마음이 잠시 편해진다. 마치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해결된 걸까? 급하게 정리하느라 엉뚱한 서랍에 넣어둔 것은 아닐까. 마치 양말을 속옷 서랍에 넣은 것처럼 말이다. 제대로 정리되는 않은 감정은 속옷 서랍에 넣은 양말처럼,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와서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어느 날, 하루가 유난히 힘들었던 날. 퇴근길에 직장동료에게 푸념하듯 말한다.

“오늘 진짜 힘들었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네.”

내 얘기를 들은 동료가 말한다.

“지금 일이 너랑 안 맞는 거 아니야? 그렇게 힘든데 계속해야 해? 그만둬.”


그 순간, 그 말을 한 당사자가 생각한다.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매번 힘든 건 아닌데.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은 것도 아니고, 사실 재미있을 때도 많은데.’

그 하루가 힘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안에도 웃음과 작은 성취가 분명히 있었다. 때로는 위로의 말이 오히려 듣는 사람에게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하는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일이 힘들다고 해서 일 자체가 싫은 건 아니고, 슬프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 두, 세, 네 가지 감정의 교차점에서 항상 살아간다.


행복하면서도 외롭고,

강하면서도 흔들리고,

감사하면서도 불안하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하는 일에서 유능한 사람도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실수도 한다.

평소 남에게 친절한 사람도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 현재 잘나가는 사람도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힘들어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해서도, 감정에 대해서도 어느 한쪽만 보지 않는 것이다.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감정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TV 속 만인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우울증을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소히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고백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삶이 본래 그런 교차점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하나의 감정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감정을 명확히 정리하고 결론 내리는 것이 ‘성숙함’은 아니다. 오히려 겹쳐 있는 감정의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성숙함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거나 기분이 언짢아지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이런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야.”


기쁨과 불안이 함께 있어도 괜찮고,

사랑하면서 두려워해도 괜찮다.


우리의 삶은 여러 색이 겹쳐져 새로운 빛을 만들어내는, 끝없는 교차와 변화의 공간이다. 그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교집합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조금씩 성장한다. 그 모든 감정의 색을 품은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게 된다.



keyword
이전 25화"언제 가장 행복해" 라는 물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