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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head Oct 26. 2024

나의 커리어 도전기

Stepping Stones: 걸림돌에서 디딤돌로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더미를 들고 들어갔다. 영어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그동안 했던 활동들, 추천서들 바리바리 싸가지고 인터뷰 장소로 갔다. 심장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쿵쾅거리고, 눈은 떨려서 반쯤 풀려있고, 아침에 펜을 물고 발음 연습을 많이 해서인지 입술이 타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인터뷰는 시작이 됐고, 처음 받은 질문에 무겁게 입을 뗐다. 5초 정도나 지났을까, 인터뷰 심사하는 사람 한 명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미간을 찡그리며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젓는다. 이 기억이 내가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본 첫 인터뷰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리고는 무슨 질문을 받았는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정신없이 인터뷰가 끝났고, 헐레벌떡 명함을 받으며 돌아서려는 순간, 내가 소중히 준비해 간 서류뭉치(포트폴리오)가 바닥에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서류들은 사무실 구석구석까지 흩어졌고, 나는 그걸 무릎을 꿇고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서류를 모으며,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음에도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날의 인터뷰가 나에게 그런 경험이다. 하지만 이민 생활에서 처음 맞닥뜨린 이 실패의 경험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인터뷰 경험이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배우는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나의 커리어 도전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 전에 혹시라도, 이번 주 주제의 글을 편하게 읽으려고 연 독자들에게 좀 길 수도 있겠다는 당부와 양해를 미리 구해본다. 가능하면 내가 경험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배운 점들을 공유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경험(Experience)이 경력(Career)으로 넘어가려면 분명히 이(Reflection) 과정이 필요하다.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예상치 못한 사연들은 정말 많다. 나 역시 많은 황당한 경험들을 겪었다.


위에서 언급한 첫 인터뷰 경험 외에도, 기억에 남는 사례들이 있다. 한 번은 인터뷰를 보러 갔는데, 면접관이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왔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 잠시 인터뷰만 보러 왔다며 아기를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아기가 계속 울자 그 면접관은 내 얘기를 10% 정도 나 들었을까. 결국 인터뷰 중간에 아이를 달래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그 매니저, 그 회사와의 인연도 거기서 끝이 났다.


또 다른 사연도 있다. 나를 채용하겠다는 확답을 받고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미팅까지 했지만, 정작 그 매니저가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하는 바람에 나의 서류가 다음 담당자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결국 나의 채용도 자동으로 취소되었다.


심지어는, 이력서를 직접 전달하러 회사 앞을 방문했을 때도 기막힌 상황이 있었다. 회의 중이라며 한 시간을 기다리게 해 놓고, 결국 매니저라는 사람이 나와서 내 이름도 묻지 않고 이력서만 받아 들고 다시 들어가 버렸다. 회사 밖, 차 안에서 대기하던 남편이 "무슨 대화를 이렇게 길게 했냐"며 내심 기대하는 얼굴에 대고, 눈물을 머금고는 회의 중이라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이력서만 주고 나왔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답을 해줬다.


1차, 2차, 3차, 4차, 심지어 5차까지 인터뷰를 보고는 결국 다른 사람을 채용했다는 연락을 받은 적도 있었다.


더 황당한 경험은 어렵게 취업한 회사에서 한 달도 되지 않아 내가 진행하던 트레이닝 수업 중 브레이크 타임에 도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 일로 인해 나를 포함한 모든 수업 참가자들이 경찰 조사를 받았던 어처구니없는 경험도 있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오늘 할 트레이닝 자료와 순서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나에게 상사 한명이 복도에서 인사를 하고 지나치는 나를 따라와서 조용히 나한테서 마늘냄새가 난다고 말한 경험도 있다. 우리 회사는 Scent Free 구역이라 조심해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지금 아니, 몇년 정도가 지났을때 이런 말을 농담이나 지나가는 말로라도 들었다면 분명 다르게 대체했을텐데 그때는 넑이 나가 어떻게 대체할지 허둥대고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실망은 컸고 좌절도 됐다. 이민자로써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사람들에게 취업 트레이닝을 해준다는 일은 나를 항상 긴장하게 했다.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벌어졌을까. 이런 시련들 없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얻어서 더 잘할 텐데.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정말 잘한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들을 겪으면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들 커리어 상담해 주는 사람인데, 이런 일들이 나중에 좋은 얘깃거리가 되겠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과정이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유연함과 인내심을 배우게 되었고, 언젠가는 이런 경험들이 내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좋았다.


커리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 중에 안 좋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행운, Serendipity처럼 뜻밖의 기회들이 나에게 찾아오곤 했다.


나에게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겼던 첫 번째 인터뷰에서 그래도 그 정신없는 와중에 명함은 받아가지고 나온 것이 다시 연락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두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이메일로 나의 상황을 업데이트하면서 마지막에 "자리가 있으면 연락 달라"는 메시지를 두세 번 보냈다. 그때는 그저 답장도 기대안하고 안부정도만 전달하는 메일이였는데 (실제로 답장을 받지도 못했고), 어느 날 메일을 보낸 직후에 메일을 받은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얘기 없이 "내일 사무실로 올 수 있어?" 라는 말을 들었다. 그 다음날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그 책임자는 이미 계약서를 책상 위에 프린트해 놓고는 나를 바로 채용해 주었다. 놀랍게도 한 달 뒤 그분은 은퇴를 했고, 나에게는 은인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 남편의 대장내시경 예약일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어렵사리 시간을 조정해서 병원 가기 한 시간 전에 인터뷰를 보고, 부랴부랴 남편을 병원에 내려주었다.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갑자기 채용 전화를 받았다. 기쁨에 겨워 병원 대기실에서 소리 지를 뻔한 순간이 있었다.


2021년 지병으로 고생하던 가족 한명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생겼다. 그렇지만 글로벌 팬데믹으로 한국에 갈 수 없어 깊은 상실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예전에 대학에서 몇번의 트레이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함께 일했던 매니저가 연락을 해왔다. 그 매니저는 경증 성인 자폐아를 대상으로 취업 교육을 하는 수업을 인터넷과 교실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새로운 프로젝트(Hy-Flex)를 시작했는데 훈련해 주는 사람을 못 찾았다고 나에게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전에 취업이 어려운 대상을 훈련해본 경험이 있어서 마음을 다해 그렇게 나는 1년간 그 일을 했고, 그 경험은 내가 매니저 자리를 구하는 학교에 이직을 할 때 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방법으로 트레이닝 경험이 있는 사람을 구하는 곳이였고 연봉 인상과 내가 원하는 조건을 다 받아주면서 채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인터뷰에 허덕이고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고 적응하느라 애쓰는 사람에서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되어있고, 지금은 캐나다 대학에서 커리어 리더십을 가르치고 훈련방법을 전수해주는 강사가 되었다. 내가 하는 선택이 어떻게 다음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항상 질문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선택이 나의 가치(value)와 목적(purpose)에 부합하는가?"


이 질문은 나를 중심에 두고 상황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때로는 당장의 결과가 불확실하고,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 명확하지 않더라도, 그 선택이 나의 신념과 장기적인 목표에 맞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내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이 된다.


이렇게 나의 기준과 원칙을 점검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할 때, 결과가 어떻든 후회는 남지 않는다. 결과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해도, 그 선택이 나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는 어떤 길을 향해 갈 것인가. 과거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듯, 현재 내가 하는 선택이 나의 미래를 어떻게 형성할지 궁금하다. 이것이 다시한번 커리어의 정의이고, 그래서 커리어는 계속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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