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텍스는 때로 베이비텍스를 능가한다.
살다보면 종종 이런 일들이 있다. 나의 짧은 똑단발과 남편의 덥수룩한 머리길이는 사실 기장 차이가 별로 없건만, 똑같은 볼륨매직을 해도 내가 더 큰 돈을 내게 된다. 같은 브랜드 내 비슷한 라인의 남성복이 소재나 마감이 더 튼튼한데 가격은 여성복이 비싼 때도 더러 있다. 화장품도 남성용보다 여성용의 가격대가 묘하게 높게 형성되어 있다. 왜 때문인지 알 수가 없으면서 동시에 알 것도 같다. 이른바 핑크텍스이다.
실제로 세금은 아닌데, 특정 집단·상황에서 추가 비용이 붙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을 꼬집을 때 쓰는 '~텍스(tax)'는 핑크텍스 외에도 다양하다. 아기용품이라면 일단 비싸고 보는 베이비텍스도 있고, 똑같은 꽃장식과 메이크업에 '웨딩'이라는 글자만 붙으면 가격이 치솟는 웨딩텍스도 있다. 요즘은 호두를 키우면서 또 다른 새로운 종류의 추가 비용 현상을 겪고 있다. 펫텍스다. ‘반려동물 전용’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똑같은 물건도 값이 훌쩍 뛰어오른다. 핑크텍스나 웨딩텍스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펫텍스도 분명 존재한다.
내가 처음 펫텍스를 체감한 순간은 호두를 키우기 시작할 무렵부터이다. 호두의 거실생활을 앞두고 현관에 설치할 안전문을 구매하면서, 펫텍스가 무려 베이비텍스를 넘어설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안전문은 현관이나 주방으로 향하는 벽과 벽 사이에 설치해서 아기나 반려동물의 출입을 막아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물건이다. 아기용이나 반려동물용 모두 소재나 디자인 등 외관도 비슷하고, 설치방법도 똑같다. 다만 아기용, 대형견용, 소형견용에 따라 높이의 차이가 조금씩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기용 안전문보다 반려동물용 안전문의 가격이 더 비싸게 형성되어 있었다.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능상 차이가 있는지 수십 번을 검색하고 확인해 본 뒤, 우리 가족은 아기용 안전문을 구매해 설치했다. 웃돈을 얹어주고 반려동물용 안전문을 고집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요상한 경험은 시작에 불과했다. 강아지 욕조를 구매하면서는 더 큰 황당함을 느꼈다. 우리 집은 매일 산책을 다녀온 뒤, 강아지 풋클렌저로 호두 발바닥을 가볍게 씻어준다. 그때마다 화장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씻기는 게 영 허리가 불편했다. 폭풍 검색 끝에 사람 욕조에 걸쳐 사용하는 강아지 욕조를 찾았다. 허리가 훨씬 편할 것 같았다.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더 좋은 상품이 있는지 검색을 계속했다. 그러다 내 눈을 의심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강아지 욕조와 100% 똑같이 생긴 제품을 아기 욕조로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기용 욕조의 가격은 강아지용보다 30%나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 후에도 펫텍스는 잊을만하면 얼굴을 들이밀었다. 펫 전용 제품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가격 차이에 눈이 커다래지는 일은 끝없이 이어진다. 먹거리에 있어서도 그런데, 강아지는 유당을 분해하지 못해 락토프리 전용 우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사람용 락토프리 우유보다 강아지 락토프리 우유가 훨씬 비싸다. 유산균도 마찬가지다. 강아지 유산균은 성분에 있어 사람용 유산균과 큰 차이를 가지지 않고, 대개 사람용 제품이 균주도 다양하고 함량도 높은데 가격은 강아지 제품이 더 높다. 물론 반려동물 전용 제품은 동물들에게 적합하게 용량이 맞춰져 있고, 급여하기도 편리하게 만들어졌다지만 그런 것을 고려해도 가격은 그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또 있다. 애견 전용 물티슈. 반려동물용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람이 사용하는 물티슈와 비교했을 때 산도(ph)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가격은 훨씬 더 비싸다. 목욕 후 쓰는 애견 전용 타월도 그렇다. 흡수력이 좋다고 강조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사람용 극세사 타월과 성능에 있어 별 차이가 없다. 소비자는 '반려동물 전용'이라는 글자가 박힌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지갑을 연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당연히 모든 펫 전용 제품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반려동물의 신체구조와 습성을 고려해 설계된 제품들이 꼭 필요한 경우도 많다. 나도 물티슈나 세안제, 강아지 샴푸 등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드시 강아지 전용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강아지 피모의 산도는 사람과 달리 중성에 가깝기 때문에 사람 제품을 사용하면 피모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문제는 꼭 그렇지 않은 제품들마저 펫텍스가 붙어 가격이 치솟거나, 전반적으로 반려동물 전용 제품들에 과도하게 높은 시장가격이 형성되어 소비자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비싼 값을 치를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펫텍스는 결국 시장과 소비자 심리의 산물이다. 반려동물이 가족으로 여겨지면서, 보호자들은 ‘조금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그 마음을 기업들이 놓칠 리 없다. '반려동물 전용이니까 더 안전하다'는 메시지는 보호자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가격 프리미엄으로 이어진다.
현명한 소비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투입이 필요하다. 꼭 필요한 성분과 기능인지 따져보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생각해 보고,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제품이 있는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 전용'이라는 글자에 혹하여 덥석 덥석 결제버튼을 누르다 보면 펫텍스와 호갱의 늪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