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애견용품
옛날에 쇼핑센터나 공원에서 펫 스트롤러(pet stroller), 일명 개모차를 탄 강아지와 마주칠 때면 속으로 실소하기도 했다. 강아지라면 제 발로 걷게 해야지 개모차가 웬 말이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아지 보호자로 거듭난 지금은... 몇 달째 개모차를 점점 자라나는 호두의 키와 눈높이에 딱 맞게 개조하려고 바닥쿠션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노력하고 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고, 겪어보지 않은 일에 함부로 입 댈 것 없다는 말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호두를 키우게 되고, 새롭게 마주하는 세상은 강아지라는 존재 그 자체 외에도 더 있었다. 바로 예상치 못한 애견용품의 다양함이다. 수많은 사료와 간식, 목줄과 하네스, 사이즈와 두께가 다른 배변패드 같은 건 그냥 애교 수준이고, 세상에는 내가 상상도 못 했던 다양한 애견 상품들이 있었다. 처음 펫 페어에 방문했을 때의 문화충격이란! 눈이 띠용 뜨이고, 벌어진 턱이 다물어질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신문물이란, 역시 누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우리 집에서 톡톡하게 제 몫을 하는 애견용품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본다.
아침이면 호두만 집에 남고 다른 가족들은 학교와 회사로 뿔뿔이 흩어진다. 오후에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호두는 혼자 집을 지켜야 한다. 처음 호두를 데려올 때만 해도, 펫숍 사장님은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만 밥을 주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동물병원을 찾았을 때, 수의사 선생님은 강아지가 월령을 고려해도 많이 마른 편이라며 사료양을 늘리도록 권했다. 그렇지만 아기 강아지가 한 번에 소화할 수 있는 양은 많지 않았다. 사료를 조금 늘렸더니 대번에 묽은 변을 보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마구 뒤진 후 주문한 것이 자동 급식기와 정수기다.
하루에 네 번, 설정해 놓은 시간마다 덜커덕 레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밥그릇에 사료가 쏟아진다. 덜커덕 소리만 나면 호두는 신이 나서 밥그릇을 향해 달려간다. 정수기도 구매를 후회한 적이 없을 정도로 가심비가 훌륭하다. 아무리 매일 물그릇에 깨끗한 물을 담아두고 나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이물질이 떠다니곤 했다. 정수기를 들인 후로는 언제든 호두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어 무척 마음에 든다.
호두는 목욕을 즐기는 강아지라 씻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쟁은 목욕이 끝난 뒤에 시작된다. 호두가 드라이기만 보면 전생의 원수라도 만난 듯, 적개심을 드러내며 노즐을 물어버리려 앙앙 입질을 하기 때문이다. 호두를 끌어안고 입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바람을 보내 말려주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몸부림치는 호두 발톱에 수십 번 할큄을 당하고서 결국 펫 드라이룸을 들였다.
펫드라이룸의 덩치와 가격 때문에 한참을 망설이다 두 눈 딱 감고 구입했다. 역시 사람들이 새롭고 비싼 기계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목욕 후 실랑이 없이, 맛있는 간식과 함께 드라이룸에 넣고 버튼 한 번만 누르면 털이 말려진다니. 큰 수고를 덜었다. 게다가 물기를 말리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털 빠짐과 털날림도 드라이룸 필터로 해결되니, 집안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쯤 되면 펫 드라이룸이 호두와 나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지 않나 싶다.
강아지를 개모차에 태우고 걷는 주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누군지 모르는 그들을 향해 늦게나마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특히 소형견을 데리고 외출할 때 개모차는 필수품이나 다름없다. 강아지가 너무 어리다거나, 노견이라 건강이 좋지 않다거나, 충분한 체력이 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긴 산책이 어려운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게다가 강아지 출입이 가능한 쇼핑센터 등도 이동장이나 개모차 탑승을 필수 조건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 내내 이동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다가는 사람이 먼저 쓰러질지도 모른다. 개모차는 긴 시간 외출 시에 아주 요긴한 이동 수단이다.
강아지도 이갈이를 한다.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동안, 사람처럼 잇몸이 가려워 자꾸 뭔가를 물고 씹고 싶어지나 보다. 진작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강아지 치발기나 커피나무 스틱을 잔뜩 마련해 두었을 텐데. 강아지에게도 치발기 장난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죄로, 우리 집 나무 가구 다리는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다. 뒤늦게 이런저런 장난감을 사주었지만, 나무 씹는 재미를 알아버린 호두는 쉬이 가구 상처 내기를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들인 장난감이 커피나무 스틱이다.
진짜 커피나무를 예쁘게 다듬은 단순한 막대기인데, 앞발 사이에 딱 끼우고 아주 야무지게 물어뜯는다. 뜯다가 일부 조각을 먹어도 강아지 건강에 해롭지 않다고 한다. 벌써 세 개 정도의 커피나무 스틱이 몽당연필처럼 닳아 버려졌고, 오늘도 호두는 저기 거실 한 구석에서 새로운 스틱을 물어뜯고 있다.
호두를 키우기로 한 뒤, 펫보험을 가입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여전히 많은 견주가 가입여부를 두고 고민 중일 것이다. 애견 카페에 들어가 보면 펫보험 가입 여부와 보험사 선택을 묻는 고민글이 언제든 심심치 않게 보이니 말이다. 다행히 강아지가 평생을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낸다면 보험이 크게 필요 없겠지만, 사람 일 알 수 없는 것처럼 강아지 일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 호두가 크게 다치거나 아팠을 때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고민하는 상황을 피하고자 가입했다.
가입한 이후에도 두어 달 보험료가 나갈 때마다 내가 필요 없는 돈을 쓰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었는데, 막상 호두가 귓병이 생겨서 2주간 병원 진료를 받고 나자 보험가입은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 되었다. 건강보험이 없는 병원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진료경험이 생긴 뒤로는 누군가 펫보험 필요성에 대해 물으면, 가급적 가입하라고 적극 권하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애견용품, 애견상품은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혹해서 구입했지만 결국 쓸모없는 쓰레기로 전락한 것들도 여럿 있었다. 우리집의 경우, 탈취 미스트(손에 들기만 해도 호두가 기겁하며 도망간다), 발바닥 크림(보습효과는 있겠지만, 호두가 먹지 않고 피부에 양보를 해야 말이지), 눈물 파우더(진짜 눈물 많은 강아지에게는 아무짝에 쓸모없다), 단계별로 난이도가 다른 노즈워크 장난감(강아지가 '똑똑'해야 고난이도 노즈워크를 쓸 수 있다) 등이 그 예이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강아지 키우기에도 '템빨'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좋은 용품 하나가 사람의 수고를 확 줄여주고, 사람과 강아지의 삶의 질을 동시에 높여준다. 결국 각자 생활 패턴과 성향에 맞게, 필요한 범위 내에서 현명한 소비를 하는 것이 답일 것이다.
오늘도 엄청난 규모의 애견용품 시장이 순진한 강아지 보호자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격하게 환영 중이다.
어서와, 강아지 용품은 처음이지?
부디 당신과 내가 이 카오스 세계 안에서 현명한 소비자로 남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