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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견이다!

옷과 장신구 따위는 내가 거절하겠다.

by 정벼리

우리 가족 모두 호두가 첫 반려견이다. 호두를 데려왔을 때, 초보 보호자답게 우리는 강아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사료, 간식, 산책, 훈련 등 강아지와 관련한 모든 것을 배워야만 했다.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은 유튜브다. 영상을 몇 개 보고도 해결되지 않으면, 반려견 카페를 둘러보고 질문글도 남기며 답을 구하기도 한다.


내가 자주 접속하는 반려견 카페의 글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어떻게 하면 강아지를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정보 공유 글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우리 강아지가 얼마나 귀여운지를 은근히 자랑하는 글이다. 보통 새 옷을 입은 모습, 미용 후 달라진 스타일, 산책길에서 찍은 멋진 사진 등이 주를 이룬다.


카페에 올라온 다른 강아지들의 사진을 보다 보면 정말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많은 강아지들이 다양한 옷과 장신구를 거리낌 없이 착용하고 있다. 머리 위로 솟은 털을 귀엽게 그러모아 리본 장식으로 묶어두기도 하고, 선캡과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산책을 나가거나, 예쁜 원피스에 목걸이를 걸고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퍽 자연스럽기도 하다. 그게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면, 우리 집 호두는 모든 옷과 장신구를 격렬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호두에게 옷을 입히면 곧장 잔뜩 성이 나서 옷자락을 이로 물어뜯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어깨나 배에 닿은 옷을 물어뜯지 못하면, 다리 쪽 스커트라도 물고 싶어서 선 채로 제 꼬리 잡기를 하듯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앙앙 입질을 하는 기묘한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한다. 모자를 씌우면 눈을 위로 치켜뜬 채 사팔뜨기 같은 표정으로 굳어버린다. 몸에 걸쳐지는 모든 것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지라,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모양의 가볍고 단순한 목줄이나 하네스만 사용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는 길에서 현란한 옷과 선글라스를 착용한 강아지를 볼 때 속으로 혀를 끌끌 차는 편이었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지 개한테 사람 흉내를 내도록 시키는 것 같아 영 불편했다. 그런데 강아지를 직접 키워보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 집 강아지는 사람 막내딸이나 다름없어요,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니고, 강아지는 강아지답게 키워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같은 입장이다. 다만, 강아지에게 입히는 옷가지들이 꼭 강아지를 사람처럼 대하려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 날, 평소처럼 카페를 둘러보다가 여름철에 적당한 강아지 털 길이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 한 여름에 강아지 장모를 유지하는 견주들을 나무라며 강아지가 얼마나 덥겠냐고, 여름엔 털을 짧게 밀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댓글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아지는 땀이 나지 않아 피부로 열을 식히지 못해요. 털 길이와 더위는 상관없어요."
"털이 너무 짧으면 오히려 자외선에 피부가 직접 노출되어 안 좋아요."
"굳이 한 여름에 털을 길게 해 둘 필요는 없죠. 짧게 미용 후 면소재 옷을 입혀주는 것이 좋아요."


강아지는 사람과 신체구조가 달라, 짧은 털이 무조건 시원할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 사람들의 착각이라고 한다. 게다가 여름철에 가벼운 티셔츠를 입히는 것은 자외선 차단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지열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체구가 작은 강아지는 지면과 가까워 지열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다. 거기다 얇은 옷을 입힘으로써 모기나 진드기 같은 해충을 막는 효과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신발이나 선글라스 등 소품도 마찬가지다. 백내장 등 안질환이 있거나 눈이 약한 강아지에게 선글라스와 선캡은 패션이 아니라 일종의 보호구가 될 수 있다. 한여름과 한겨울엔 신발도 필수품이 된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에 강아지는 쉽게 발바닥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반대로 겨울에는 차가운 지면 때문에 동상을 입거나, 제설용 염화칼슘 때문에 발바닥 피부가 손상될 수 있다고 했다. 보호자의 과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강아지 건강을 위해 필요한 도구들이었다.


직접 강아지를 키워보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다. 단순히 사람 눈에 귀여워 보이려고 강아지에게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는 줄만 알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지난 세월 내가 가졌던 편견과 좁은 시선이 새삼 부끄러웠다.


나는야, 자연견! 맨몸으로 뛰는 게 가장 좋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호두는 여전히 맨몸이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그렇게 싫다는 옷을 억지로 입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호두에게 아이가 붙여준 별명은 바로 '자연견'이다.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보았다. 숲 속에서 자연인이 옷을 걸치지 않은 채 편안히 드러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호두는 자연견인가 봐. 호두도 맨날 옷 벗어던지고 누워버리잖아!”
"맞네. 우리 호두는 자연견이라 옷을 싫어하는구나."


우리는 깔깔 웃었다.




우리 집 호두는 자연견이다. 옷을 거부하는 대신 흙냄새, 풀잎 향기, 바람의 감촉을 더 즐기고 싶은 강아지. 호두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맨몸 그대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옷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호두를 지켜주려 한다. 여름철엔 적당히 1cm 남짓의 털을 유지해 주고, 저녁 9시 무렵 충분히 지열이 식은 뒤에 산책길에 나서기. 산책 후 발바닥을 꼼꼼하게 닦고 말려주기. 정기적으로 구충제를 챙겨 먹이기.


호두야, 우리가 도와줄 테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맨몸으로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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