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 이야기
호야는 참 흔한 식물이다.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호야는 화분이라는 작품 속에서 그 역할이 조연에 그치는 때가 많다. 개업이나 승진, 기념일 등 좋은 일이 있는 날, 선물로 중품 이상의 관엽식물이 배달되면 꽤 높은 확률로 주인공 식물에 곁들여진 호야를 함께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집 창가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는 대품 킹벤자민 화분은 몇 해 전 결혼기념일에 깜짝 선물로 배달되었는데 꾸밈 식물로 호야가 함께 심겨 왔다.
주연인 킹벤자민은 생장점이 잘려 곁가지는 풍성해질지언정 더 이상 키는 자라지 않았는데, 조연인 호야는 끝없이 줄기를 뻗고 새 잎을 틔워냈다. 점점 자라나 줄기 끝이 바닥에 끌릴 지경이 되자, 나는 소독한 전지가위를 들고 뿌리 쪽에 이파리 서너 장을 남기고 나머지 줄기를 댕강 잘라냈다. 잘린 호야 줄기는 셋. 병에 물을 담에 잘린 줄기 끝을 퐁당 담갔다. 세 줄기 전부 예쁜 흰 뿌리가 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상대로 세 줄기 모두 흰 뿌리를 쑥 내밀어, 각진 화분에 삼형제가 나란히 함께 심겨 창가로 옮겨졌다.
호야는 삽목이나 물꽂이로 번식하기가 이렇게나 쉽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호야는 덩굴식물답게 줄기 마디마다 뿌리가 아주 쉽게 생긴다. 게다가 두툼한 다육성 식물이라 잎에 물을 저장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수분 저장 능력이 좋은 만큼 뿌리가 날 때까지 쉽게 말라죽지 않는다. 천성이 얼마나 강하고 튼튼한지 모른다.
창가의 호야 삼형제는 나로서는 처음으로 호야가 주연인 화분을 기르는 일이었다. 품종에 따라 잎의 크기와 모양이 천차만별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식물인지 플라스틱 조화인지 헷갈릴 정도로 통통한 다육성 이파리는 (당연히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다분히 주관적인 나의 미적 잣대로는 그다지 따로 공들여 키우고 싶을 만큼 예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삼형제에게 그들만의 화분을 만들어준 것도, 잘라낸 싱싱한 줄기를 굳이 내다 버리기엔 어쩐지 죄책감이 들어서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삼형제를 키우면서 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따로 제 집을 갖게 된 호야는 쉴 새 없이 꽃무리를 피워냈다. 호야에서 꽃을 본 건 처음이었다. 재미있는 건, 호야의 꽃잎도 통상의 꽃잎과는 다르게 제 이파리처럼 두껍고 단단한 편이라는 것이다. 밀랍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질감에 약간의 광택이 돌아, wax flower라는 별명에 걸맞은 외형을 가졌다. 활짝 핀 호야 꽃은 투박한 질감과는 달리 꽤나 디테일이 정교하고 화려하다. 문제는 꽃봉오리 상태였다. 마치 연자방을 보듯, 무리지어 달린 꽃봉오리는 일종의 환공포증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예닐곱 번째 꽃봉오리가 달렸을 때, 나는 가위를 들고 창가를 서성였다. 꽃봉오리를 그냥 콱 잘라버릴까 고민이 되었다. 생명력을 뽐내며 연신 꽃을 피워내는데, 보기 싫다고 뎅강 잘라버리는 게 맞나 싶어 망설이던 참에 아이가 다가와 물었다.
"엄마, 뭐 해?"
"네가 보기엔 이 꽃 어때?"
"음…꽃봉오리가 꼭 종이별 접어놓은 것 같다!"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뎅, 울렸다. 종이별? 긴 종이를 꼼지락꼼지락 동그랗게 말아 접은 그 종이별? 한번 접기 시작하면 해지는 줄 모르고 접고 또 접었던 그 종이별? 아이 말을 듣고 보니 호야 꽃봉오리는 정말 종이별 모양이었다. 한 번 종이별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제법 귀여웠다. 그러네, 종이별이네, 하며 가위는 다시 서랍에 얌전히 집어넣었다.
사람 마음이 이토록 간사하다. 그리고 세상만사 모두 마음먹기에 달린 것도 분명하다. 뭐든 예쁜 건 내가 예쁘게 보아 예쁜 것이고, 못난 것도 내가 못나게 보아 못난 것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불쾌한 느낌에 심박수가 올라가던 꽃봉오리가 순식간에 낭만적이기 짝이 없는 종이별 꽃으로 격상되니 말이다. 오늘도 우리 집에는 종이별이 활짝 피어났다.
혹시 종이별이 피어난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아직 보지 못했다면, 한번 피워내보세요.
호야는 어디서나 잘 자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