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미라 이야기
사랑하는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떠난 날은 참으로 허망했다.
노환이 깊어진 할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몇 주를 앞두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한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던 노인이, 이동침대에 눕혀진 채로 병원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자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는 혼몽 중에도 병원은 싫다고 몸부림을 쳤다. 여기 들어가면 죽는다고. 쇠약한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강한 몸짓이었다. 노인이 병원에 입원하면 죽어서나 나온다는 그 공포는, 아마도 7년간 요양병원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내려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할머니를 돌보며 생긴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몹시도 겁에 질려있었다.
코로나의 패악질이 정점을 찍던 때라, 병원에서는 면회가 금지되었다. 몇 주 뒤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의사의 판단이 내려지고, 할아버지는 작은 병원으로 옮겨져 임종을 준비하게 되었다. 거기도 면회는 금지였다. 마지막 임종을 지키는 것도 가족 중 딱 한 사람에게만 허락되었다. 나는 그의 막내아들의 딸이니,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할 유일한 자손은 어떻게 헤아려도 나에게는 돌아올 수 없는 막중한 자리였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몸부림치던 모습이 생전의 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허망하다는 말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나의 할아버지는 그런 모습을 보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고지식한 양반의 후예라, 걷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도 마치 맑은 날인양 태연히 비를 맞고 걸을지언정 경박스럽게 뛰는 일이 없는 답답한 사람이었다. 매달 몸이 약한 아내가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면 손 꼭 잡고 함께 걷다가도 저 앞에서 행인이 마주 오면, 뭐가 부끄러운지 부여잡고 있던 아내 손을 냅다 뿌리칠 만큼 체면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한자가 가득한 책은 줄줄 읽어내도 재산을 일구는 데에는 소질이 없던 그는, 어느 밤 큰 형님네 집에 아들 학비를 꾸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채 코가 빠져 집에 돌아오고서,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아내가 아주버님께 학비 좀 빌려보자 사정해도 묵묵부답 등을 보인 채 꽃나무만 다듬었더랬다.
평생을 말없이 꽃나무를 돌보던 할아버지. 그는 어떤 화분에도 노랗게 시들고 마른 잎을 단 한 장도 허용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매일 베란다에서 화분을 하나하나 검수하듯, 이리저리 돌려가며 시든 잎을 정리하고 고루 햇빛을 받도록 가꿨다. 천장에 걸어 늘어뜨린 공중 식물도 있었는데, 유난히 작은 동글 잎이 빽빽해서 몸단장에 긴 시간이 걸리고는 했다. 아마도 푸미라였던 것 같다.
푸미라의 학명은 Ficus pumila이고, 때로 푸미라 고무나무, 푸미라 아이비라고도 불린다.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덩굴 식물의 특성을 보이고, 손톱만한 작은 이파리의 테두리엔 하얀 무늬가 새겨져 있다. 직사광선을 바로 받으면 잎이 타버리기 쉬워 반그늘에서 키우는 것이 좋지만, 너무 그늘지면 잎에 무늬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높은 공중습도를 좋아해서 잎에 분무를 자주 해주면 잘 자라는데, 뿌리는 과습에 취약해서 화분에 심을 때 배수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잎이 노화하면 갈변하며 시들어 바닥에 수시로 마른 잎이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줄기 끝에 새 잎은 계속 틔워 올리니 아주 츤데레 중에 상 츤데레다. 말로만 들어선 상당히 까탈스러운 식물 같지만, 막상 실제 키우는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다.
푸미라를 키우기 시작한 지 10년은 족히 지났다. 푸미라, 워터코인, 트리안 등 동글동글한 작은 잎은 언제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참 많이도 가꿨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바깥에서 푸미라를 만나면 내 것보다는 할아버지네 베란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폭포 같은 동글 잎이 먼저 떠오른다.
비록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최후의 1인으로 후보등록조차 못할 만큼 통례적으로는 거리가 있다 여겨지는 손녀딸이지만, 진실로는 나보다 더 할아버지와 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확신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르팍에서 유년기를 보낸 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TV 리모컨을 냅다 뺏을 수 있는, 만날 때나 헤어질 때 꼭 끌어안는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먹던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할아버지 입에 쑥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손주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 많은 자손 중에 나를 위해서만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시간에 맞춰 매일 아파트 입구까지 마중을 나왔고, 내 운동화 밑창이 닳았을 때 새 운동화를 사주마 신발가게로 손을 잡아끌었다. 내가 어릴 때엔 그가 애지중지 키우던 화분을 엎어버려도 허허 웃었고, 다 큰 내가 그의 반쯤 비운 소주병을 뺏어버려도 또 허허 웃었다. 아, 우리 할아버지는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겐 말도 없고 웃음도 없었다.
긴 시간 쌓아온 깊은 유대가 무색하게 변변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서일까. 무정한 할아버지는 떠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꿈에 한 번 나오질 않는다. 먼저 간 할머니는 한 번씩 찾아와 손 붙잡고 시장통도 걸어보고, 남편이랑 ‘이-삔 데 누우라’며 아랫목에 구름처럼 폭신한 이부자리도 깔아주고 했는데. 꿈에 내가 아무리 할머니 집에 놀러 가도, 베란다에 콕 틀어박혀 하염없이 화분이나 돌려보고 있는지 할아버지는 머리털 한 올을 안 보여준다. 아무래도 노인네가 단단히 삐졌나 보다.
푸미라는 가지나 잎이 잘리면 고무나무처럼 하얀 진액이 나온다. 이게 독성이 있어서 반려동물이 먹으면 건강에 좋을 것이 하나 없다. 그래서 시들어 떨어진 잎들을 강아지가 주워 먹지 못하도록 하루 이틀에 한 번씩 일부러 가지를 털어 마른 잎을 떨구게 하고 그때그때 치워주고 있는데, 생각보다 좀 귀찮다. 옛날 할아버지의 베란다에는 마른 잎 한 장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매일 가지 하나하나 훑어가며 잎을 정리해 주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대체 무슨 마음으로 매일같이 그 많은 이파리를 하나하나 들췄을까. 무슨 생각하냐고 한번 물어라도 볼 걸 그랬다.
지나 놓고 보니 묻지 못한 말, 전하지 못한 마음이 너무 많다.